어슴푸레한 새벽, 간밤의 부산 밤바다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해운대 달맞이 고갯길을 천천히 올랐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뽀얀 대구탕 한 그릇을 향한 간절함 때문이었다. ‘기와집대구탕’, 10년 만에 다시 찾는 그곳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묵묵히 아침을 맞고 있었다.
예전에는 허름한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깔끔하게 확장 이전한 모습에 살짝 놀랐다. 세월의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나 보다. 예전의 정취는 조금 사라졌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어진 맛을 기대하게 만드는 외관이었다.

주차장에는 능숙한 솜씨로 주차를 안내하는 요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확실히 예전보다 규모가 커진 만큼, 찾는 사람도 더 많아진 듯했다. 주차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서니, 넓고 깔끔한 홀이 눈에 들어왔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해운대 바다 풍경은 덤이었다. 시원한 대구탕 한 그릇과 함께 즐기는 오션뷰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이 있을까.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보니, 역시나 단일 메뉴, 대구탕 백반(15,000원)뿐이었다. 고민할 필요 없이 대구탕을 주문했다. 잠시 후, 스테인리스 밥그릇에 담긴 뽀얀 대구탕과 정갈한 밑반찬들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대구탕 위에는 송송 썰린 파가 듬뿍 올려져 있었다.

먼저 국물부터 한 숟갈 떠서 맛봤다. “캬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텁텁함 없이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은, 마치 숙련된 조련사처럼 나의 잠든 세포들을 하나하나 깨워 일으켰다. 은은하게 퍼지는 대구의 풍미와 시원한 무의 조화는,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대구 살은 또 얼마나 푸짐한지. 큼지막하게 썰린 대구 살이 넉넉하게 들어있었다. 젓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부드럽게 부서지는 살결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신선한 대구 특유의 담백함과 촉촉함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테이블 한 켠에는 다진 땡초가 놓여 있었다. 맑은 국물 그대로의 맛을 음미하다가, 땡초 다진 양념을 살짝 넣어봤다. 뽀얀 국물이 살짝 붉어지면서 칼칼한 향이 코를 찔렀다. 국물 맛은 순식간에 180도 돌변했다.
마일드했던 국물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강렬하게 변했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은, 땀샘을 자극하며 온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해장으로 이만한 음식이 또 있을까.

함께 나오는 밑반찬들도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졌다. 짭짤한 김, 아삭한 콩나물무침, 매콤한 김치, 달콤한 무 장아찌 등, 대구탕과 곁들여 먹기에 훌륭한 반찬들이었다. 특히 김에 밥과 대구 살을 함께 싸 먹으니, 바다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더욱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땀을 뻘뻘 흘리면서 뚝배기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이 맛에 기와집대구탕을 찾는 것이지.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키오스크에는 대구탕 사진과 함께 15,000원이라는 가격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가격은 예전에 비해 조금 올랐지만, 여전히 훌륭한 가성비라고 생각했다. 푸짐한 양과 변함없는 맛, 그리고 멋진 바다 풍경까지 고려하면, 전혀 아깝지 않은 가격이었다.

가게를 나서며 다시 한번 해운대 바다를 바라봤다. 맑고 푸른 바다는 언제나처럼 아름다웠다. 시원한 대구탕 한 그릇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나니, 세상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부산의 맛, 부산의 낭만이 아닐까.
다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었다. 주말이나 휴가철에는 웨이팅이 길다는 점, 그리고 남은 음식을 포장할 수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을 감수할 만큼 대구탕의 맛은 훌륭했다.
몇몇 후기에서 직원들의 불친절함을 지적하는 글을 보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는 다행히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하지만, 서비스는 언제나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맛은 물론, 서비스까지 완벽한 곳이 된다면, 기와집대구탕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해운대 맛집이 될 것이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한번 방문해야겠다. 시원한 대구탕을 맛보여 드리고, 함께 해운대 바다를 거닐고 싶다. 기와집대구탕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진 해운대 바다는 여전히 반짝였다.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든 이곳에 와서 시원한 대구탕 한 그릇으로 위로받으리라고. 기와집대구탕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 부산 지역명을 대표하는 진정한 맛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