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에서 약속이 있던 날, 지인들과 조용한 저녁 식사를 위해 며칠 전부터 구글맵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 발견한 작은 이자카야, ‘보름’. 후기를 살펴보니 주말에는 예약이 안 되고, 6시만 되어도 만석이라는 이야기에 살짝 불안감이 감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하니, 역시나 예상대로 가게 앞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였다.
“맙소사, 웨이팅 1순위라니…”
다른 곳을 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주변 식당들은 어쩐지 텅 비어 있는 모습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보름’만이 홀로 북적이는 모습은 왠지 모를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한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따뜻한 나무 내음과 함께 활기찬 이자카야 특유의 분위기가 나를 감쌌다. 다찌 테이블만이 놓인 아담한 공간은 오히려 그 덕분에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는 가지런히 놓인 젓가락과 냅킨, 그리고 깨끗하게 닦인 물컵이 놓여 있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시원한 물수건과 함께 웰컴 푸드가 나왔다. 작은 카나페였지만, 입맛을 돋우는 데는 충분했다. 바삭한 크래커 위에 신선한 채소와 토마토가 올라가 있었는데, 한 입 베어 무니 상큼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함께 간 지인들은 기다림에 지쳐 살짝 예민해져 있었지만, 웰컴 푸드와 함께 사케를 한 잔씩 마시더니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 특히 술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은 사케를 고르면서부터 만족감을 드러냈다.
메뉴를 펼쳐 들자, 다채로운 일본 요리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시미, 튀김, 구이, 나베 등 없는 게 없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사시미 모리아와세, 치즈 감자, 해장 나베, 그리고 새우튀김을 주문했다.

주문 후, 나는 산토리 하이볼 한 잔을 주문했다. 투명한 잔에 담긴 하이볼은 보기만 해도 청량감이 느껴졌다. 레몬 한 조각이 상큼함을 더했고, 탄산 기포가 톡톡 터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한 모금 들이키니, 위스키의 향긋함과 탄산의 청량함이 어우러져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었다.
가장 먼저 나온 메뉴는 사시미 모리아와세였다. 신선한 해산물이 보기 좋게 담겨 나왔는데,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모습이 정말 먹음직스러웠다. 광어, 연어, 참치, 도미 등 다양한 종류의 사시미를 맛볼 수 있었는데,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었다. 특히 숙성회 특유의 감칠맛이 살아있어 더욱 만족스러웠다.

다음으로 나온 메뉴는 치즈 감자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치즈 감자는 맥주 안주로 제격이었다. 고소한 치즈와 담백한 감자의 조화가 환상적이었고, 겉면에 뿌려진 파슬리가 향긋함을 더했다.
얼큰한 국물이 당길 때쯤, 해장 나베가 등장했다. 큼지막한 뚝배기에 담겨 나온 나베는 보기만 해도 속이 풀리는 듯했다. 각종 해산물과 채소가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고, 칼칼한 국물은 정말 시원했다. 특히 우동 면발이 쫄깃쫄깃해서 더욱 맛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메뉴는 새우튀김이었다. 튀김옷은 바삭하고 새우는 탱글탱글했는데, 눈앞에서 펼쳐지는 튀김 장인의 솜씨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기름 온도와 튀기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 튀겨낸 새우튀김은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방의 청결함이었다. 튀김, 구이, 전골 등 다양한 요리를 하는 주방이었지만, 기름때 하나 없이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런 점이 더욱 신뢰감을 주었다.
음식을 모두 비우고, 마지막으로 진토닉을 주문했다. 헨드릭스 진토닉은 정말 호텔 바에서 마시는 것 같은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은은한 허브 향과 상큼한 레몬 향이 어우러져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해 주었다.
만약 배가 부르지 않았다면, 메뉴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시켜보고 싶을 정도로 모든 메뉴가 만족스러웠다.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저녁 식사였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좋은 술과 음식에 어울리는 좋은 음악이 없었다는 것이다. 잔잔한 음악이라도 흘러나왔다면 더욱 분위기가 좋았을 것 같다.
광명 어느 골목에 숨어 있는 이자카야 ‘보름’. 코로나 시기에는 비교적 한산했지만, 어느 순간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이곳의 시메사바(고등어 초절임)는 정말 맛있다고 하는데, 고등어 제철에만 맛볼 수 있다고 하니 다음에는 꼭 시메사바를 먹어봐야겠다.

또한, 사장님이 매장에 한정 수량으로 주문해 놓으시는 일본주도 가성비 좋은 것들을 선착순으로 맛볼 수 있다고 하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니, 어느새 밤이 깊어 있었다. ‘보름’의 따뜻한 조명이 골목길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기다림에 지쳐 짜증이 났던 기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대화로 가득 찬 행복한 기억만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보름’에서 느꼈던 만족감을 곱씹으며 다음 방문을 기약했다. 광명에서 뜻밖의 맛집을 발견한 기쁨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다음에는 꼭 시메사바와 함께 사장님 추천 일본주를 맛봐야지. 그리고 그땐, 좋은 음악과 함께 더욱 황홀한 저녁을 보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