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5일장에 가면, 늘 마지막 코스는 잔치국수 한 그릇이었다. 따뜻한 멸치 육수에 후루룩 넘어가는 소면의 감촉, 어렴풋한 기억 속 그 맛을 찾아 나선 길. 목적지는 행주산성, 그곳에 원조국수집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핸들을 잡았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굽이굽이 길을 따라 들어가니, 과연 소문대로 많은 차들이 좁은 길가에 빼곡히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 안내를 도와주시는 분들의 활기찬 모습에서부터 맛집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침 운 좋게 한 자리가 나서 주차를 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 후끈한 열기가 확 느껴졌다. 넓은 홀에는 손님들로 가득했고, 테이블마다 놓인 푸짐한 국수 그릇들이 눈에 띄었다. 마치 잔칫날 큰 어머니 댁에 온 듯한 푸근한 분위기였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받는 시스템이었는데, 메뉴는 단출했다. 잔치국수와 비빔국수, 그리고 여름 한정으로 콩국수까지. 잔치국수 보통 하나와 비빔국수 하나를 주문했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국수가 나왔다. 스테인리스 대접에 가득 담긴 잔치국수의 양에 입이 떡 벌어졌다. 면 위에는 김 가루와 송송 썰린 파가 넉넉하게 뿌려져 있었고, 멸치 육수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투명한 듯 뽀얀 국물은 보기만 해도 속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면을 들어 올리니, 탱글탱글한 면발이 끊어지지 않고 쭈욱 딸려 올라왔다. 드디어 맛보는 순간. 멸치 육수의 깊고 시원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인위적인 감칠맛이 아닌, 멸치를 푹 우려낸 듯한 자연스러운 깊이가 느껴졌다. 면발은 어찌나 잘 삶아졌는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환상적이었다. 마치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함께 나온 김치는 적당히 익어 새콤하면서도 아삭한 맛이 일품이었다. 짭짤한 멸치 육수와 매콤한 김치의 조화는 그야말로 환상의 짝꿍이었다. 국수 한 입, 김치 한 입 번갈아 먹으니, 쉴 새 없이 젓가락이 움직였다.

비빔국수 또한 양이 엄청났다. 붉은 양념장 위에 김 가루와 깨가 듬뿍 뿌려져 있었고, 신선한 상추가 곁들여져 나왔다. 양념 냄새가 어찌나 좋던지,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젓가락으로 비빔국수를 야무지게 비벼 한 입 맛보니, 새콤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양념 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쫄깃한 면발과 아삭한 상추의 조화도 훌륭했다. 특히, 비빔국수와 함께 나오는 멸치 육수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진한 멸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 왜 이 집이 멸치 육수로 유명한지 알 수 있었다.

혼자 방문해서 조용히 식사하는 사람, 연인끼리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 아이와 함께 온 가족 등 다양한 손님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국수를 즐기고 있었다. 테이블 회전율이 빠른 편이라, 대기 시간이 길지 않은 점도 좋았다.
워낙 양이 많아서, 아무리 배가 고팠어도 국수를 남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양이 적은 사람들을 위해 ‘양 적게’ 옵션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에는 꼭 ‘양 적게’로 주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보니, 출입구 옆에 맥심 커피 자판기가 놓여 있었다. 단돈 100원에 즐기는 커피 한 잔의 여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니,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행주산성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산성을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었다. 특히, 산성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행주산성 원조국수집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당이 아닌,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 그리고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멸치 육수의 깊은 맛은 왜 이곳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고양시 맛집인지 설명해준다. 다음에 또 잔치국수가 생각날 때면, 주저 없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때는 꼭 ‘양 적게’로 주문해서, 국물까지 싹 비워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