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을 걷는 여행은 늘 설렘을 안겨준다. 이번에는 특별히 3코스와 4코스를 역방향으로 교차하며 걸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해안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울고 배에서는 쉴 새 없이 꼬르륵거리는 요동치는 배꼽시계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득, 늦은 저녁에도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는 곳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스쳤다. 다행히도, 작은 희망을 품고 찾은 곳은 온평리, 그곳에서 ‘성읍 삼거리’라는 정겨운 이름의 식당을 발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함께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마지막 손님이라 생각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여쭤봤는데, 사장님께서는 환한 미소로 반겨주시며 자리를 안내해주셨다. 따뜻한 온돌 바닥에 앉으니, 언 몸이 사르르 녹는 듯했다. 메뉴판을 펼쳐보니, 다양한 제주 향토 음식들이 눈에 띄었다. 우렁쌈 정식, 전복 물회, 묵은지 삼겹살… 고민 끝에, 땀 흘린 뒤에는 역시 삼겹살이지! 라는 생각으로 묵은지 삼겹살을 주문했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도 잊지 않았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는 순식간에 진수성찬으로 가득 찼다. 숯불이 들어오고, 그 위에는 두툼한 삼겹살과 큼지막한 새송이버섯이 함께 올려졌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의 소리는 마치 귓가에 맴도는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렸다. 특히 묵은지의 깊은 맛은 정말 잊을 수 없었다. 적당히 익어 새콤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묵은지는, 돼지 특유의 느끼함을 잡아주며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줬다.

사장님의 인심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커다란 쟁반에 푸짐하게 담긴 싱싱한 쌈 채소들은 종류도 다양했다. 깻잎, 상추, 배추, 고추… 갓 밭에서 따온 듯 신선함이 느껴졌다. 쌈 채소 위에 잘 익은 삼겹살 한 점, 묵은지, 그리고 쌈장을 올려 크게 한 쌈 싸서 입 안 가득 넣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톡 쏘는 마늘과 매콤한 고추를 더하니, 맛은 더욱 풍성해졌다. 시원한 생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니, 온몸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곁들여 나오는 반찬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느껴졌다. 짭짤한 멸치볶음, 향긋한 톳나물 무침, 아삭한 콩나물 무침, 달콤한 호박볶음, 매콤한 김치… 마치 할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듯한 푸근한 맛이었다. 특히, 따뜻하게 구워져 나온 호박은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워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우렁쌈 정식을 먹고 있었는데, 싱싱한 채소 바구니와 함께 쌈장이 곁들여 나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음에는 꼭 우렁쌈 정식을 먹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날, 우연히 점심시간에 들러 우렁쌈 정식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신선한 쌈 채소에 우렁쌈장을 듬뿍 넣어 싸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우렁쌈장은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쌈 채소의 신선함은 물론, 쌈장의 깊은 맛에 감탄했다.

또 다른 날 저녁,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고등어구이가 먹고 싶어 다시 성읍 삼거리를 찾았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특히, 짭짤한 간이 딱 맞게 배어 있어 밥반찬으로 최고였다. 같이 나온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니, 고소한 맛이 더욱 살아났다. 사장님께서 직접 담그신 듯한 깍두기는 시원하고 아삭했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정말 꿀맛같은 식사였다. 아쉬운 마음에 밥 한 공기를 더 시키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불러 참았다.

성읍 삼거리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아닌,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늦은 시간에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늘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사장님 덕분에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한 푸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 성읍 삼거리는 그래서 나만의 제주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제주 올레길을 걷다가, 혹은 온평리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한다. 분명 잊지 못할 맛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밤은 짙어져 있었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시원한 밤공기를 마시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 든든하게 채워진 배만큼이나 마음도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다음 제주 지역명 여행에도, 성읍 삼거리는 꼭 다시 방문해야 할 곳으로 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