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 중앙시장의 활기 넘치는 풍경을 뒤로하고,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바로 ‘인정식당’. 오래된 맛집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낡은 벽돌 건물과 퇴색한 간판에서 풍겨져 나오는 세월의 흔적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외관은,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찾았던 시골 장터 어귀의 식당을 떠올리게 했다.
녹색 간판에 씌어진 ‘인정식당’이라는 정겨운 글씨와 전화번호가 왠지 모르게 푸근하게 다가왔다. 건물 벽면에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하게 자라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낡은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고,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벽에는 오래된 달력과 그림 액자가 걸려 있었다. 벽에 걸린 낡은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미 식사를 하고 계신 손님들이 몇 테이블 있었는데, 하나같이 연륜이 느껴지는 분들이었다. 어쩌면 이분들은 젊은 시절부터 이곳을 드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자, 할머니께서 따뜻한 물수건과 함께 메뉴판을 가져다주셨다. 메뉴는 단촐했다. 아욱정식과 순대국, 콩나물국밥이 전부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욱정식을 주문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아욱국의 향수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문이 들어가자, 할아버지께서는 능숙한 솜씨로 계란말이를 부치기 시작하셨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두 분의 모습은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온 노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잠시 후, 커다란 쟁반에 가득 담긴 아욱정식이 눈앞에 놓였다. 푸짐한 아욱국을 중심으로, 갓 부친 따뜻한 계란말이, 파김치, 김, 그리고 다양한 김치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푸짐한 한 상이었다. 마치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차려주는 듯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먼저, 아욱국부터 맛을 보았다. 큼지막한 뚝배기 안에는 아욱과 함께 멸치, 새우 등 다양한 재료들이 듬뿍 들어 있었다. 국물을 한 입 떠먹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시원하고 깊은 맛!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잊고 지냈던 고향의 맛이 느껴졌다.
밥은 백미와 잡곡밥 두 종류가 준비되어 있어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잡곡밥을 선택했는데,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알은 보기만 해도 식욕을 자극했다. 밥맛 또한 일품이었다. 갓 지은 밥 특유의 향긋함과 찰진 식감이 입안을 즐겁게 했다.
계란말이는 갓 부쳐져 따뜻했고, 겉은 노릇노릇, 속은 촉촉했다. 간도 적당해서 밥반찬으로 먹기에 딱 좋았다. 파김치는 적당히 숙성되어 아삭한 식감과 함께 매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김은 바삭했고, 간장 양념에 찍어 밥과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반찬은 종류도 다양했지만,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특히, 직접 담근 김치들은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도, 적당한 간과 양념이 어우러져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할머니께서는 끊임없이 부족한 반찬은 없는지, 밥은 더 필요한지 물어보시며 챙겨주셨다. 마치 친할머니 댁에 온 듯한 푸근함과 따뜻함에 마음까지 훈훈해졌다.
아욱국은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그 맛과 비슷했다. 투박하지만 별다른 양념 없이 순수한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조미료 맛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사실 아욱국의 간이 조금 센 편이었지만, 오히려 밥과 함께 먹으니 균형이 잘 맞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인공적인 조미료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린, 건강한 집밥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자, 할아버지께서는 현금 또는 계좌이체를 부탁하셨다. 요즘 같은 시대에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오랜 세월 동안 변치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정겹게 느껴졌다.
아욱정식 가격은 9,000원. 솔직히 가격만 놓고 보면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푸짐한 양과 정성 가득한 맛, 그리고 따뜻한 인심을 생각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인정식당은 대천해수욕장에서도 멀지 않아, 보령에 놀러 온 관광객들이 아침 식사를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다만, 주차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주변 골목에 주차를 해야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식당은 새벽부터 오후 2시까지만 영업하는 아침 식사 전문점이다. 새벽에 일 나가는 운전기사나 인부들이 주 고객이라고 한다. 늦게 방문하면 맛있는 아욱국을 맛볼 수 없으니, 서둘러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인정식당은 화려하거나 세련된 분위기의 식당은 아니다. 하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푸근한 인심과 따뜻한 집밥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듯한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분이 좋았다. 인정식당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닌, 따뜻한 추억과 정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음에 대천해수욕장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꼭 다시 인정식당을 찾아 아욱국을 맛봐야겠다. 그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 인정식당은 단순한 맛집을 넘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따뜻한 공간이다.
인정식당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고. 그리고 인정식당의 아욱국은, 바로 그런 마법 같은 힘을 가진 음식이었다.
보령에서 맛보는 잊을 수 없는 맛집의 추억, 인정 넘치는 노부부의 따뜻한 손맛이 그리워지는 하루였다. 다시 한번 이 지역명을 방문할 이유가 확실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