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는 간장게장을 ‘밥도둑’이라 부르셨다. 짭짤하면서도 감칠맛 도는 그 맛에 밥 한 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 같은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전국 각지의 내로라하는 게장 맛집들을 순례했지만, 할머니가 말씀하시던 그 ‘진짜 밥도둑’을 만났다는 느낌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산으로 떠난 여행길에서 우연히 들른 한 식당에서, 마침내 잊고 지냈던 ‘진짜’를 마주하게 되었다.
서산은 예로부터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지역이라고 한다.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차를 몰아 도착한 식당은,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식당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왁자지껄한 소리, 맛있는 냄새가 뒤섞여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나를 감쌌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꽃게탕 등 다양한 메뉴들이 눈에 띄었지만, 나의 선택은 단연 간장게장이었다. 서산까지 왔으니, 이 지역의 특산물인 간장게장의 진수를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간장게장 정식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식당 내부를 둘러보았다. 깨끗하게 정돈된 테이블,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 그리고 벽면에 걸린 서산의 풍경 사진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간장게장이 나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딱지, 꽉 들어찬 알, 그리고 먹기 좋게 손질된 게 다리들이 보기만 해도 군침을 삼키게 했다. 옅은 갈색 빛깔을 뽐내는 간장게장은 신선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게딱지 안에는 주황색 알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젓가락으로 게딱지 안의 알을 살짝 떠서 맛을 보았다. 입안 가득 퍼지는 녹진한 풍미,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신선한 게 특유의 달콤함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이곳의 간장게장은 짜지 않아서 좋았다. 간혹 어떤 곳들은 너무 짜기만 해서 게의 풍미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운데, 이곳은 간장의 염도가 적절해서 게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것은 국룰. 따끈한 쌀밥에 게딱지 안의 알과 내장을 듬뿍 넣고, 참기름을 살짝 뿌려 비벼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밥알 하나하나에 게의 풍미가 스며들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김에 싸서 먹어도 정말 맛있었다. 짭짤한 간장게장과 고소한 김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게 다리 살도 놓칠 수 없었다. 젓가락으로 게 껍데기를 살짝 벌려, 뽀얀 속살을 조심스럽게 발라냈다. 탱글탱글한 게살을 입에 넣으니,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느껴졌다. 씹을수록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은, 신선한 게를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게 껍데기에 붙은 살까지 꼼꼼하게 긁어먹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코스였다.

간장게장과 함께 나온 반찬들도 훌륭했다. 김치, 나물, 젓갈 등 정갈하게 담긴 반찬들은 하나하나 맛깔스러웠다. 특히 우럭젓국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짭짤한 젓갈과 시원한 국물의 조화는, 간장게장의 느끼함을 싹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에 담겨 나온 계란찜도 인상적이었다. 부드러운 식감, 은은한 단맛이 간장게장의 짭짤함을 중화시켜주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계란찜을 한 입 떠먹으니, 입 안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돌솥밥도 빼놓을 수 없었다. 갓 지은 따끈한 돌솥밥은 윤기가 좔좔 흘렀다. 밥을 그릇에 옮겨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만들어 먹으니, 든든하면서도 따뜻한 마무리가 되었다. 누룽지를 먹으니,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누룽지 맛이 떠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배가 빵빵하게 불러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속은 더부룩하지 않고 편안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정성껏 만든 음식은, 역시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식당을 나서는 길, 주인 아주머니는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주셨다. 친절한 서비스 덕분에, 더욱 기분 좋게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곳의 간장게장은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게의 품질, 맛, 그리고 푸짐한 반찬들을 고려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서산 현지인들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하니, 그만큼 맛은 보장된 셈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차장이 협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식당 맞은편에 무료 공용 주차장이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면 된다. 그리고 어리굴젓이 나오지 않은 날도 있다고 하니, 어리굴젓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근 주방장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는 여전히 훌륭한 맛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맛은 변할 수 있는 것이니, 너무 맹신하지는 말자.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맛을 즐기는 것이다.
서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곳에서 간장게장을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짭짤하면서도 감칠맛 도는 간장게장의 매력에 푹 빠져,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물론, 다른 맛집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이곳이 서산 최고의 맛집이었다. 다음 서산 방문 때도, 나는 망설임 없이 이곳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이 맛있는 간장게장을 함께 즐겨야겠다.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 행운을 잡기 위해, 나는 오늘도 새로운 맛집을 찾아 떠난다. 서산의 이 작은 식당에서 맛본 간장게장의 감동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서산 맛집 기행, 다음 목적지는 어디로 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