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천 순대, 그 이름만 들어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어릴 적 장날이면 어김없이 맡았던 그 쿰쿰하면서도 구수한 냄새, 어머니 손에 이끌려 찾아갔던 북적거리는 시장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잊고 지냈던 그 맛을 찾아, 주말을 이용해 천안 지역명 병천으로 향했다.
병천순대 거리에 들어서니,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낡은 간판들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고, 좁은 골목길 사이로 순대국밥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수많은 순대국밥집 중에서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한 곳은 바로 ‘청화집’이었다.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의 풍모가 느껴지는 외관은, 어린 시절 추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분주한 주방의 모습은,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인지 짐작하게 했다.

주차는 쉽지 않았다. 가게 앞에 겨우 3~4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근 도로 갓길에 주차할 수 있어서 큰 불편함은 없었다. 주차를 마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테이블은 입식으로 되어 있었고, 좌식 테이블은 없었다. 시골집 같은 정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화려하거나 세련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이 좋았다.
메뉴는 단출했다. 순대국밥과 순대 한 접시, 딱 두 가지였다. 메뉴판에는 “순대만 또는 고기만 주문 가능”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머뭇거릴 필요 없이 순대국밥과 순대 반 접시를 주문했다. 혼자였지만, 이왕 온 김에 순대의 참맛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살펴보았다. 순대 한 접시 14,000원, 순대국밥 9,000원, 순대 반 접시 7,000원.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착한 가격이었다.

주문한 순대 반 접시가 먼저 나왔다. 접시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순대와 돼지 부속 부위들이 보기 좋게 담겨 있었다. 큼지막하게 썰린 순대에서는 선지의 깊은 색깔이 그대로 드러났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돼지 귀와 혀는 쫄깃한 식감을 예고하는 듯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게 했다.

젓가락으로 순대 한 점을 집어 들었다. 겉은 쫄깃하고 속은 촉촉했다. 입안에 넣으니, 선지의 풍미와 야채의 아삭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특히, 양배추의 은은한 단맛이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인 당면 순대와는 확연히 다른, 깊고 풍부한 맛이었다. 돼지 귀는 꼬들꼬들한 식감이 재미있었고, 혀는 부드럽고 고소했다. 함께 나온 쌈장에 찍어 먹으니, 감칠맛이 더욱 살아났다.
곧이어 순대국밥이 나왔다. 뚝배기 안에는 순대와 고기가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파 송송 썰어 넣은 모습은, 투박하지만 정겨웠다. 뽀얀 국물에서는 깊은 맛이 느껴졌다. 코를 찌르는 강렬한 향은 없었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구수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했다. 국물에는 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다진 양념과 새우젓으로 취향에 맞게 간을 맞춰 먹으면 된다.

먼저 국물부터 맛보았다. 뽀얗고 깊은 국물은 담백하면서도 구수했다. 인위적인 조미료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정성껏 끓여낸 육수의 깊은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다진 양념을 살짝 풀어 넣으니,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더해졌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니, 감칠맛이 더욱 살아났다.
국밥에 들어있는 순대는 반 접시에 나왔던 순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큼지막한 순대가 무려 7~8개나 들어 있었다. 숟가락으로 듬뿍 떠서 입안에 넣으니, 뜨끈한 국물과 함께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돼지 부속 부위도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쫄깃한 머릿고기와 꼬들꼬들한 돼지 내장은, 씹는 재미를 더했다. 밥 한 공기를 말아서 깍두기와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함께 나온 깍두기와 김치도 훌륭했다. 깍두기는 적당히 익어서 아삭아삭했고,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김치는 겉절이 스타일이었는데, 젓갈 향이 강하지 않아서 좋았다. 특히, 깍두기는 순대국밥과 환상적인 조합을 자랑했다. 뜨끈한 국밥 한 입 먹고, 시원한 깍두기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정신없이 순대국밥을 먹다 보니, 어느새 뚝배기 바닥이 드러났다.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배가 불렀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진한 아쉬움. 그만큼 맛있는 한 끼 식사였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니, 밖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청화집은 화려하거나 세련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7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정겨운 분위기와 푸짐한 인심,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는 맛이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순대국밥처럼,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이었다.

병천에는 수많은 순대국밥집이 있지만, 청화집은 나에게 특별한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을 넘어,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고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에 병천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주저 없이 청화집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는 순대 한 접시를 시켜놓고,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여유를 즐기고 싶다.
병천순대 거리에서 만난 청화집 순대국밥 한 그릇. 그 맛은 단순한 음식을 넘어, 잊고 지냈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천안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