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서울, 그중에서도 영등포에서 약속이 잡혔다. 복잡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문득 고향의 따뜻한 밥상이 그리워졌다. 전라도 음식 전문점을 찾아 나선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작지만 깊은 맛을 숨겨둔 듯한 “고흥식당”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아담했지만, 벽 한쪽에 자리 잡은 오래된 사진들과 정감 있는 소품들이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마치 오랜 단골집에 들어선 듯한 기분 좋은 익숙함. 자리에 앉자마자 사장님은 푸근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주셨다. 메뉴판을 채 정독하기도 전에, 마치 어머니가 챙겨주시듯 밑반찬들이 하나 둘 테이블 위를 채워나갔다.

멸치볶음의 짭짤함, 김치의 깊은 맛, 그리고 톡톡 터지는 듯한 해초 무침까지. 하나하나 맛을 음미할 때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풍미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특히 따뜻하게 부쳐진 계란말이는 어릴 적 소풍날 어머니가 싸주시던 그 맛 그대로였다.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반찬들에서 고향의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듯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
메인 메뉴를 고르기 전부터 이미 마음은 푸근한 고향에 도착해 있었다. 메뉴판을 훑어보니, 싱싱한 해산물을 주재료로 한 전라도 향토 음식들이 눈에 띄었다. 곰삭은 묵은지의 깊은 맛이 느껴질 것 같은 갈치조림,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진 오징어볶음… 고민 끝에 나는 이 집의 대표 메뉴라는 간재미찜을 주문했다.
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간재미찜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첫인상은 소박했다. 화려한 비주얼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깊은 맛을 숨기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반건조된 간재미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그 위에는 통깨가 넉넉하게 뿌려져 있었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예상치 못한 맛의 향연이 펼쳐졌다. 겉은 쫄깃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간재미의 식감이 놀라웠다.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올라왔고, 찜 요리 특유의 감칠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양념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간재미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절묘하게 배어 있었다.
사장님의 손맛이 느껴지는 양념은 간재미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짭짤하면서도 매콤한, 그리고 달콤한 맛이 어우러진 양념은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젓가락질은 쉴 새 없이 이어졌고,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비워냈다.

함께 나온 홍어는, 솔직히 말하면 살짝 걱정스러웠다. 홍어 특유의 강한 향 때문에 쉽게 도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의외로 부드러운 맛에 놀랐다. 톡 쏘는 암모니아 향은 은은하게 느껴졌고, 오히려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듯했다. 사장님 말씀으로는, 숙성 정도를 조절해 홍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간재미찜과 홍어를 번갈아 맛보며, 전라도의 깊은 맛에 흠뻑 빠져들었다. 밑반찬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느껴졌고, 메인 메뉴는 물론, 곁들여 나오는 음식들까지 완벽했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푸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식사였다.

혼자 먹기에는 양이 꽤 많았지만, 젓가락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배가 터질 듯 불렀지만, 남은 음식들이 눈에 아른거려 억지로 입에 넣었다. 정말이지, 남기기에는 너무 아까운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사장님께서 따뜻한 미소로 배웅해주셨다. “다음에 또 오세요”라는 짧은 인사가, 왠지 모르게 뭉클하게 다가왔다. 단순한 식당이 아닌, 고향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발견했다는 기쁨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영등포 한복판에서 만난 전라도의 맛, 고흥식당. 화려한 레스토랑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진정한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혹시 영등포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잊고 지냈던 고향의 따뜻한 밥상을,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가게 안은 단골손님들로 북적였다. 연신 오가는 정겨운 대화 속에서, 이곳이 단순히 식사를 해결하는 공간이 아닌,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오가는 곳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그 따스함에 동화되어, 다음 방문을 기약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

고흥식당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식사를 넘어, 잊고 지냈던 고향의 정취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북적이는 도시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따뜻한 고향의 품에 안긴 듯한 느낌. 영등포에서 만난 작은 전라도 맛집, 그곳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