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명절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홍어. 특유의 톡 쏘는 향 때문에 어른들만 즐기시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묘하게 끌리는 그 맛을 언젠가는 꼭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려 시대부터 삭힌 홍어의 발상지로 이어져 온다는 영산포 홍어거리에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영산포 홍어거리는 생각보다 훨씬 활기 넘치는 곳이었다. 40여 곳의 홍어 음식점과 도매상이 옹기종기 모여 저마다의 역사를 자랑하는 듯했다. 거리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듯한 알싸한 홍어 향이 느껴졌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기분과 동시에, 과연 내가 이 강렬한 향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긴장감이 들었다. 수많은 식당들 중, 단연 눈에 띈 곳은 큼지막한 글씨로 쓰인 “홍어1번지”였다.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홍어 조형물이 이곳이 홍어 전문점임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마치 나를 향해 어서 들어오라는 듯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랄까.
건물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듯 깔끔했고, 전용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식당 입구에는 홍어명인 인증서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었다. 왠지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보다 밝고 깨끗한 실내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테이블마다 놓인 태블릿 메뉴판은 편리함을 더했고,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 덕분에 기분 좋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사실 홍어를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과 전라도의 여러 식당에서 홍어삼합을 맛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영산포는 삭힌 홍어의 본고장이라는 생각에, 왠지 더 강렬하고 터프한 맛을 경험하게 될 것 같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메뉴판을 펼쳐보니 홍어회, 홍어무침, 홍어탕 등 다양한 홍어 요리가 눈에 들어왔다. 고민 끝에 홍어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다는 홍어정식을 주문했다. 국내산과 칠레산, 흑산도산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직원분께서 국내산을 추천해주셔서 그걸로 결정했다.
잠시 후, 테이블 위로 정갈하게 차려진 홍어 요리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핑크빛을 머금은 홍어회는 신선해 보였고, 보쌈과 묵은지는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었다. 홍어애, 홍어튀김, 홍어전 등 다채로운 요리들은 홍어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가장 먼저 홍어삼합에 도전했다. 얇게 썰린 홍어회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코를 톡 쏘는 암모니아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살짝 긴장한 채로 홍어를 입에 넣었다. 생각보다 많이 삭히지 않은 듯,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졌다. 뒤이어 묵은지의 시큼한 맛과 수육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지면서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삭힌 홍어의 톡 쏘는 향, 묵은지의 깊은 맛, 수육의 부드러움이 한데 어우러져 입안에서 폭발하는 듯했다. 이어서 솔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니 입안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홍어애는 참기름에 살짝 찍어 김에 싸 먹으니 고소하면서도 녹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홍어튀김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2년 숙성된 묵은 김치는 홍어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다. 묵은 김치에 홍어를 싸서 먹으니 김치의 달콤한 맛이 홍어의 톡 쏘는 맛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듯했다.

홍어탕은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국물 맛이 인상적이었다. 홍어를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육개장 또한 깊고 진한 맛을 자랑했다.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는 육개장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했다. 얼큰한 국물 한 숟갈을 떠먹으니 온몸이 따뜻해지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왜 이곳이 나주 홍어거리에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맛집인지 알 수 있었다. 홍어 입문자도, 홍어 마니아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홍어 특유의 향을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삭힘 정도를 조절하여 손님들의 입맛에 맞게 제공하는 배려 또한 돋보였다.

홍어1번지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600년 역사를 간직한 영산포 홍어의 깊이를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고려 시대 흑산도 주민들이 영산포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홍어의 역사를 되새기며, 그 맛을 음미하니 더욱 의미있게 느껴졌다.
식당을 나서니, 어느덧 어둑해진 밤거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은은한 조명 아래 빛나는 홍어1번지의 모습은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건물 벽면에 크게 그려진 홍어 그림은 영산포 홍어거리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입안에는 아직 홍어의 알싸한 향이 맴도는 듯했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들에게도 영산포 홍어의 깊은 맛을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다.
홍어1번지, 그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영산포 홍어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나주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분명 잊지 못할 미식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총평:
* 맛: 삭힌 홍어의 발상지, 영산포에서 맛보는 정통 홍어 요리. 홍어 입문자도 즐길 수 있는 마법 같은 삭힘 정도가 인상적이다.
* 분위기: 깔끔하고 쾌적한 실내, 친절한 서비스가 돋보인다. 가족 외식, 데이트 장소로도 손색없다. 영산강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 가격: 홍어정식 코스는 2인 기준 6만원부터 시작한다.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퀄리티를 자랑한다. 국내산, 칠레산, 흑산도산 등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 재방문 의사: 나주에 방문할 때마다 꼭 들르고 싶은 맛집.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방문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