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미(五味) 중 하나라는 오리탕. 그 명성을 익히 들어왔지만, 왠지 모르게 선뜻 발길이 향하지 않았던 음식이었다. 오리고기는 구이나 훈제로만 즐겨왔던 터라, 탕으로 끓여낸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었던 탓일까. 하지만 이번 광주 여행에서 용기를 내어, 오리탕 골목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영미오리탕”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가게 앞에 다다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큼지막하게 쓰여진 “영미오리탕”이라는 글자와, 그 아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맛있는 오리탕…”이라는 문구가 정겹다. 가게 외관에는 여러 방송에 출연했던 장면들이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 있어, 이곳이 얼마나 유명한 곳인지 짐작하게 했다. 노란색 플라스틱 의자들이 일렬로 늘어선 모습은 마치 시골 버스 정류장을 연상시키며, 왠지 모를 푸근함을 안겨주었다.

점심시간을 살짝 비껴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니, 테이블마다 비닐이 깔려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테이블 간 간격이 좁아 다소 비좁게 느껴졌지만, 이런 북적거림이야말로 맛집의 증거가 아니겠는가. 메뉴는 오리탕, 오리로스, 오리주물럭 세 가지.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오리탕 반 마리를 주문했다. 둘이서 먹기에 충분한 양이라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기 때문이다.
주문이 들어가자마자, 밑반찬들이 빠르게 테이블 위로 차려졌다. 전라도 음식답게 김치 종류가 다양했는데, 묵은지, 갓김치, 배추김치 등 하나하나 맛깔스러워 보였다. 특히 갓김치는 특유의 톡 쏘는 맛과 향이 일품이었다. 짭짤하게 간이 된 깻잎 장아찌도 밥반찬으로 제격일 듯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리탕이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뽀얀 국물 위로 싱싱한 미나리가 듬뿍 올려져 있는 모습이 식욕을 자극했다. 뚝배기 안에서는 된장과 들깨가 어우러진 구수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어감 때문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던 ‘오리탕’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닭볶음탕처럼 친근한 비주얼이었다.

가장 먼저 국물부터 맛보았다. 들깨가 듬뿍 들어가 걸쭉하면서도 고소한 국물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마치 추어탕이나 들깨 수제비를 먹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된장 베이스라 텁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었다. 텁텁하지 않고 진한 국물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미나리는 탕에 푹 담가 숨을 죽인 후, 초장과 들깨가루를 섞어 만든 특제 소스에 찍어 먹으면 된다고 했다. 시키는 대로 소스를 만들어 미나리를 듬뿍 찍어 입에 넣으니, 향긋한 미나리 향과 새콤달콤한 초장, 고소한 들깨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미나리의 신선함이 그대로 느껴져 더욱 좋았다. 마치 오리고기를 먹기 위한 곁들임이 아니라, 미나리 자체가 메인 요리인 듯한 느낌이었다.
오리고기는 살코기 부분이 다소 질겼지만, 푹 고아져서인지 뼈에서 쉽게 분리되었다. 살을 발라내어 미나리와 함께 소스에 찍어 먹으니, 질긴 식감도 어느 정도 보완되었다. 오리고기 자체에서 살짝 냄새가 난다는 평도 있었지만, 나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워낙 들깨와 미나리의 향이 강렬해서 냄새를 잡아주는 듯했다.

솔직히 말하면, 오리고기 자체보다는 국물과 미나리가 훨씬 인상적이었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여기는 오리를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미나리랑 국물 먹으러 오는 곳”이라는 말이 들려왔는데, 나 역시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마치 닭갈비나 찜닭을 먹고 난 후 볶음밥을 볶아 먹는 것처럼, 이 진한 국물에 밥을 볶아 먹거나 칼국수 사리를 넣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아쉽게도 볶음밥이나 칼국수 사리는 메뉴에 없었지만, 공깃밥을 시켜 국물에 말아 먹으니 그 아쉬움이 조금이나마 달래졌다.
식사를 하는 동안, 직원분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음식을 서빙했다. 워낙 손님이 많아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필요한 것을 요청하면 빠르게 응대해 주었다. 식탁에 깔린 비닐 덕분에 뒷정리가 간편했고, 덕분에 손님들은 편안하게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가게 입구에 놓인 커피 자판기를 이용해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셨다. 텁텁했던 입안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가게 앞에는 널찍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차를 가지고 방문하기에도 편리했다.

영미오리탕에서 맛본 오리탕은, 내게 새로운 음식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오리고기를 탕으로 끓여 먹는다는 낯선 발상에도 불구하고, 들깨와 미나리의 조화는 정말 훌륭했다. 특히 미나리를 듬뿍 넣어 먹는 오리탕은, 몸보신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함께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오리고기 자체의 퀄리티나 서비스는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진한 국물과 신선한 미나리, 그리고 푸근한 분위기는 이러한 단점을 충분히 상쇄할 만했다. 광주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영미오리탕에 들러 또 한 번 오리탕을 맛볼 의향이 있다. 그 때는 오리고기 대신 미나리를 더 많이 넣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돌아오는 길, 나는 영미오리탕에서 맛본 오리탕의 여운을 곱씹으며 광주의 또 다른 맛집들을 탐방할 것을 다짐했다. 광주는 정말 맛의 고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