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30분, 서울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구미, 내비게이션은 12시 도착 예정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그날은 장마의 시작이었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비상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운전했지만, 빗물이 고인 곳을 지날 때마다 차가 휘청거렸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늦으면 맛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가능한 한 속도를 냈다. 나의 목적지는 오직 하나, 구미 도산식육식당이었다.
내비게이션은 계속해서 도착 예정 시간을 늦췄고, 결국 1시 30분이 되어서야 식당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네이버에는 라스트 오더가 2시라고 적혀 있었기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가게에서는 웨이팅 손님까지 고려하면 안 된다는 냉정한 답변이 돌아왔다. 웨이팅 명단에는 세 팀 정도가 남아 있었다. ‘내가 딱 2시에 주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주인장의 방침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서울에서 장맛비를 뚫고 5시간을 운전해 이곳까지 온 이유, 오로지 이 돼지찌개를 맛보기 위해서였다는 나의 간절한 호소에도, 가게 측은 웃으며 거절했다. 마치 즉석 떡볶이를 준비하는 시간처럼, 상차림 준비도 금방 끝날 것 같았는데.

결국 포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가게 입장도 이해는 한다. 나름의 규칙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터무니없는 부탁을 한 것도 아니었다. 1시 50분쯤에는 주문이 가능할 것 같은 웨이팅 라인이었고, 실제로 포장을 받아 차로 돌아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가게를 떠날 때쯤이 1시 45분이었다. 그때 가게 앞에는 웨이팅 줄이 딱 한 팀 남아 있었다. ‘나도 라스트 오더 시간 안에 맞춰서 정당하게 주문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다시 따지고 싶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일부러 늦게 온 것도 아니었다. 12시 도착을 예상하고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천재지변으로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2시 라스트 오더 안에는 들어가는 시간대였다. 게다가 맛집이라는 기대감에 5시간을 장맛비를 뚫고 달려온 길이었다. 물론 기상 조건이 어떻든 규칙은 규칙이다. 하지만 내가 시간이 조금 애매했을지언정, 가게 방침에 완전히 어긋나는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다못해 은행 직원도 이 정도의 센스는 발휘할 텐데. 가게 사정도 있겠지만, 더 이상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하는 길, 대전에 들러 여자친구와 1박을 하며 포장해온 돼지찌개를 맛보기로 했다. 서울로 향하는 길, 그 유명한 성심당 빵집에 들러 빵을 한아름 사들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드디어 그 유명한 도산식육식당의 돼지찌개를 개봉했다. 냄비에 담아보니, 그 양이 상당했다. 큼지막하게 썰린 돼지고기와 신선한 배추가 듬뿍 들어 있었고,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가 푸짐하게 뿌려져 있었다. 육수 없이 재료만 담겨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불을 켜고 끓기 시작하자, 돼지고기와 배추에서 자연스럽게 육수가 우러나왔다. 찌개가 끓는 동안, 코를 자극하는 매콤한 향이 식욕을 돋웠다. 드디어 맛을 볼 시간. 국물을 한 입 떠먹어보니, 강렬한 마늘 향과 고춧가루의 칼칼함이 느껴졌다. 간은 밥반찬보다는 술안주에 가까웠다. 맵고, 달고, 짰다. 하지만 묘하게 중독성 있는 맛이었다.
돼지고기는 큐브 스테이크처럼 네모나게 썰어져 있었는데, 신선한 고기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질기거나 잡내 없이 부드러웠다. 아삭한 배추와 함께 밥 위에 얹어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쌈 채소로 나온 상추에 밥, 찌개, 고추, 마늘, 쌈장을 올려 쌈 싸 먹으니, 그 맛이 더욱 풍성하게 느껴졌다.
여자친구는 그냥 ‘쏘쏘’라고 평했지만, 나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맛을 떠나, 다시 방문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이번 구미 나들이는, 나의 첫 구미 방문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도산식육식당의 돼지찌개는, 흔히 생각하는 국물이 많은 찌개라기보다는 짜글이에 가까웠다. 돼지고기와 배추, 마늘, 고춧가루 등 모든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끓인 찌개는,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마늘은, 찌개의 풍미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주었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푸짐한 양’이다. 1인분에 8천 원(공기밥 별도)이라는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고기 양이 정말 많았다. 남자 둘이서 3인분에 공기밥 2개를 시키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밥을 시키면 잔치국수 그릇에 2공기 정도를 담아주니, 인심 또한 후하다.
밑반찬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상추, 고추, 마늘, 쌈장이 전부다. 하지만 돼지찌개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오히려 밑반찬이 없는 것이 신의 한 수인 것 같았다. 돼지찌개의 강렬한 맛이 다른 반찬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김 가루와 참기름을 넣어 볶은 밥은, 찌개의 매콤한 양념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낸다. 볶음밥을 먹기 위해 찌개를 남겨두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도산식육식당은 이미 백종원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평일 점심시간에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웨이팅이 길다. 테이블이 6개밖에 없기 때문에, 회전율이 빠르지 않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는 맛이라는 평이 많다. 포장도 가능하니, 시간을 절약하고 싶다면 포장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도산식육식당은 식육식당임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 점심시간은 11시부터 2시까지, 저녁시간은 5시부터 8시까지다. 일요일은 휴무이니, 방문 시 참고해야 한다. 늦게 가면 재료가 소진되어 맛볼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 서둘러 방문하는 것이 좋다.
도산식육식당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허름하고 소박한 분위기의 노포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푸짐하고 맛있는 돼지찌개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다.
만약 도산식육식당 웨이팅 때문에 방문이 어렵다면, 구미 사곡에 있는 또 다른 도산식당이나 상돈이비빔돼지, 와촌식당(체인점)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늘이 조금만 덜 들어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국물을 따로 떠먹기에는 국물이 너무 진했다. 하지만 마늘을 아끼지 않고 듬뿍 넣어주는 사장님의 인심은 정말 훌륭했다.
도산식육식당은 한국 돼지찌개의 교과서라고 할 만하다. 제대로 된 돼지찌개를 맛보고 싶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비록 이번 구미 방문은 장맛비와 긴 웨이팅으로 인해 순탄치 않았지만, 도산식육식당의 돼지찌개는 잊지 못할 맛이었다. 언젠가 다시 구미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꼭 여유 있게 방문하여 제대로 맛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