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낡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무작정 수원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오직 하나, 정자시장 깊숙이 자리 잡은, 전주 피순대의 깊은 맛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소문 속의 맛집이었다. 며칠 전부터 SNS를 뜨겁게 달군 그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잊혀져가는 고향의 맛을 되살려낸 따뜻한 공간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시장 특유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과연 어떤 맛과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기차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점점 도시의 색채를 짙게 드러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찾았던 시골 장터의 정겨움이 아련히 떠올랐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맛있는 냄새, 그리고 푸근한 인심. 어쩌면 나는 음식을 맛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추억의 한 조각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원역에 내리자, 낯선 도시의 공기가 폐 속 깊숙이 스며들었다. 복잡한 버스 노선도를 잠시 훑어본 후, 정자시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 풍경은 빠르게 변했지만, 내 마음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정자시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양 옆으로 빼곡하게 들어선 상점들은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며 활기를 띠고 있었고, 코를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발길을 붙잡았다.
나는 마치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헤매듯 걸어 다녔다. 그러다 문득, 가마솥에서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하얀 김과 마주쳤다. 바로 그곳이었다. 간판은 빛이 바래 희미했지만, 그윽한 국물 냄새와 정겨운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드디어 소문으로만 듣던 그 전주 순대국 맛집에 도착한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보다 아담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작은 식당 안은 이미 손님들로 북적거렸지만, 묘하게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벽 한쪽에는 메뉴판이 붙어 있었는데, 머릿고기순대국, 내장순대국, 모듬순대국 등 다양한 종류의 순대국과 술국, 머릿고기 수육 등의 메뉴가 눈길을 끌었다. 특히 ‘사장님이 직접 만드시는’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 집의 대표 메뉴라는 모듬순대국을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자, 주인 아주머니는 푸근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며 따뜻한 물수건과 함께 밑반찬을 내어주셨다. 깍두기, 김치, 새우젓, 쌈장 등 소박하지만 정갈한 밑반찬들은 하나하나 직접 만드신 듯, 신선하고 깊은 맛을 자랑했다. 특히 잘 익은 깍두기는 아삭한 식감과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잠시 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모듬순대국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내 앞에 놓였다. 뚝배기 안에는 탱글탱글한 순대와 쫄깃한 머릿고기, 곱창 등 푸짐한 건더기가 가득했고, 뽀얀 국물 위로는 송송 썰어 넣은 파와 고소한 깨가 듬뿍 뿌려져 있었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국물부터 한 모금 맛보았다. 진하고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돼지 뼈를 푹 우려낸 듯한 묵직하면서도 깔끔한 국물은, 그동안 내가 먹어왔던 순대국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은은하게 퍼지는 한방 향이 더욱 깊은 풍미를 더했다.
이번에는 순대를 맛볼 차례.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순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겉은 쫄깃하고 속은 촉촉한 피순대는, 입안에 넣는 순간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폭발했다. 특히 막창으로 만든 피순대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고, 일반 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풍미를 자랑했다.
나는 쉴 새 없이 숟가락을 움직였다. 탱글탱글한 순대, 쫄깃한 머릿고기, 고소한 곱창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입안을 즐겁게 했다. 특히 국내산 김치와 함께 먹으니, 그 맛이 배가 되는 듯했다.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말아 깍두기와 함께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며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국물은 괜찮으세요?”, “혹시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와 같은 소소한 질문 속에서,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뚝배기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진한 국물과 푸짐한 건더기, 그리고 따뜻한 인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한 끼 식사였다. 나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식당 문을 나섰다.
식당을 나서자, 어둠이 짙게 드리운 정자시장 골목길은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골목길을 걸으며, 오늘 맛보았던 순대국의 여운을 음미했다.

정자시장에서 맛본 전주 피순대는 단순한 음식을 넘어, 고향의 따뜻한 정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푸짐한 양과 합리적인 가격 또한 만족스러웠지만, 무엇보다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수원 정자시장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이 맛집에 들러 전주 피순대의 참맛을 느껴보기를 추천한다. 왁자지껄한 시장 분위기 속에서 맛보는 따뜻한 순대국 한 그릇은,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다음에는 꼭 막창순대와 머릿고기 수육에 도전해 봐야겠다 다짐하며, 나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덧붙이는 이야기:
* 이곳은 매일 가마솥에 돼지 머리를 직접 삶고, 막창피순대를 직접 만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은 맛은 물론,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 순대국을 주문하면 후추, 소금, 들깨 등 다양한 토핑이 함께 제공되므로, 취향에 맞게 조절해서 먹을 수 있다.
* 혼밥하기에도 부담 없는 분위기이며, 해장으로도 제격이다.
* 주차는 다소 불편할 수 있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 사장님 인심이 좋으셔서, 양도 푸짐하게 주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