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느껴보는 쨍한 햇살에 괜스레 기분이 들뜬 오후, 문득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맡았던 따뜻한 밥 냄새가 그리워졌다. 자취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집밥, 제대로 된 한 상 차림이 늘 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던 탓일까. 오늘은 꼭 푸짐한 백반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켜 들었다.
공릉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숨겨진 듯 자리한 ‘경복식당’. 왠지 모르게 정겨움이 느껴지는 상호에 이끌려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14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식당은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였다. 노란색 간판에 큼지막하게 적힌 “경복식당”이라는 글자가 왠지 모르게 친근하게 느껴졌다. 커다란 간판 옆에는 코스메틱, 입술소독기, 세탁기라는,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는 문구들이 적혀 있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오래된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4인 테이블 위주로 아담하게 꾸며진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 왔음에도 전혀 어색함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벽 한쪽에는 방문객들의 사진과 사인이 빼곡하게 붙어 있어 이곳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메뉴는 단 두 가지, 백반과 제육 추가. 고민할 필요 없이 백반 하나와 제육 추가를 주문했다. 가격은 백반 9,000원, 제육 추가 4,000원. 자취생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일 수도 있겠지만, 오늘만큼은 제대로 된 한 끼를 즐기고 싶었다. 검은 칠판에는 ‘생선 추가 안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어 소소한 재미를 더했다.
잠시 기다리니, 순식간에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로 푸짐한 반찬들이 쏟아져 나왔다. 김치, 가지나물, 도라지무침, 어묵볶음, 소시지볶음, 콩나물무침, 깻잎장아찌, 멸치볶음, 청경채무침, 무말랭이… 무려 10가지나 되는 다채로운 반찬들이었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 아닌가 싶었지만, 하나하나 정갈하게 담긴 모습에 감탄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가장 먼저 콩나물무침에 손이 갔다. 아삭아삭한 식감과 은은한 참기름 향이 입맛을 돋우었다. 이어서 깻잎장아찌를 맛봤다. 짭짤하면서도 향긋한 깻잎 향이 밥을 부르는 맛이었다. 멸치볶음은 달콤 짭짤해서 자꾸만 손이 갔다. 하나하나 맛을 음미할수록, 반찬들이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정겹고 건강한 느낌이 들었다. 짜지 않고 간이 딱 맞아 맨입으로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반찬들을 맛보고 있으니,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흑미밥이 고봉으로 담겨 나왔다. 밥 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밥과 함께 나온 콩나물국은 콩나물과 무만 들어간 심플한 국이었지만,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얼큰한 국물이 속을 확 풀어주는 느낌이랄까. 전날 과음이라도 했다면 해장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밥과 국을 맛보고 있자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육볶음과 꽁치김치조림이 나왔다. 제육볶음은 적당히 매콤달콤한 양념에 버무려져 윤기가 흘렀다. 젓가락으로 집어 한 입 먹어보니,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주 부드러운 식감은 아니었다. 밥과 함께 먹으니, 매콤한 양념이 밥맛을 더욱 돋우었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꽁치김치조림이었다. 푹 익은 김치와 꽁치가 어우러진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젓가락으로 꽁치 살을 발라 김치와 함께 밥 위에 얹어 먹으니, 입 안에서 감칠맛이 폭발했다. 곰삭은 김치의 깊은 맛과 꽁치의 고소함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꽁치에 스며든 김치 양념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정신없이 밥을 먹다 보니, 어느새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냈다. 하지만 아직 남은 반찬들이 많았기에, 밥을 조금 더 부탁드렸다. 흔쾌히 밥을 더 주시는 사장님의 인심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배가 불렀지만, 남은 반찬들이 아까워 밥을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더 떠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테이블을 돌아다니시며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뜰히 챙겨주시는 사장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3,000원을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왠지 모르게 감사한 마음이 들어 만 원을 더 드리고 거스름돈은 받지 않았다. 건강검진 때문에 굶다가 첫 끼를 먹었다는 한 방문객처럼, 나 또한 따뜻한 밥 한 끼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복식당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 따뜻한 정과 푸근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화려하거나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정겹고 편안한 맛이 그리울 때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공릉동에서 맛보는 소박하지만 정겨운 백반 한 상, 경복식당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보세요.

총평
* 맛: 화려하진 않지만, 정겹고 따뜻한 집밥 맛. 꽁치김치조림은 꼭 먹어봐야 할 메뉴.
* 가격: 백반 9,000원, 제육 추가 4,000원. 자취생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퀄리티를 생각하면 괜찮은 가격.
* 분위기: 아담하고 편안한 분위기. 혼밥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음.
* 서비스: 사장님의 친절함과 푸근한 인심이 돋보임. 밥도 마음껏 먹을 수 있음.
팁
* 토요일 오후 5시에 방문했을 때는 한가한 편이었음.
* 평일 저녁에는 재료 소진으로 일찍 문을 닫을 수도 있으니, 미리 전화해보고 방문하는 것이 좋음.
* 혼밥도 가능하며,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맞아주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