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을 위로하는 따뜻한 국물, 건대 고흥순대국에서 맛보는 서울의 깊은 맛집

병원 문을 나서자 싸늘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며칠 째 이어진 몸살 기운에 정신이 몽롱했지만, 이대로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따뜻한 국물로 속을 든든히 채워야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곳은 건대 인근, 자양동에 자리 잡은 고흥순대국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잊지 못할 한 그릇의 순대국을 만났다.

대로변에서 살짝 안쪽으로 들어선 골목길, 붉은색 간판에 큼지막하게 적힌 “고흥순대국·머리고기”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간판 옆에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전화번호가 함께 적혀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외관에서 묘한 끌림을 느꼈다. 가게 앞에는 빨간색 자전거와 휠체어가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이 정겨웠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식당 안은 생각보다 넓었고,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흥순대국 외부 전경
정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고흥순대국 외관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니, 순대국과 돼지국밥이 주 메뉴였다. 다른 후기들을 보니 순대국을 시켜 처음에는 다진 양념 없이 맑게 즐기다가, 나중에 다진 양념을 넣어 얼큰하게 먹는 것을 추천하는 글들이 많았다. 하지만 왠지 맑은 국물이 더 끌렸던 나는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9천 원이라는 가격은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평범한 수준이었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돼지국밥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뽀얀 국물 위로 송송 썰린 파와 부추가 듬뿍 올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다양한 부위의 돼지 부속고기가 푸짐하게 들어 있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다진 파와 고추, 새우젓, 깍두기와 김치가 함께 나왔다.

돼지국밥
뽀얀 국물과 푸짐한 고기가 인상적인 돼지국밥

가장 먼저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 맛봤다.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마치 오랜 시간 정성껏 끓인 사골 육수처럼 뽀얗고 진한 국물은, 맑으면서도 담백했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깔끔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느껴졌다. 아픈 몸을 달래주는 따뜻함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듯했다.

국물 속에 숨겨진 돼지 부속고기는 생각보다 훨씬 푸짐했다. 큼지막하게 썰린 고기들은 마치 꽃잎처럼 국물 위에 펼쳐져 있었다. 젓가락으로 살짝 들어보니, 야들야들한 껍데기부터 쫄깃한 살코기, 부드러운 내장까지 다양한 부위가 섞여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기의 부드러움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푹 삶아낸 것처럼,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다. 특히 흐물흐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연한 식감은, 아픈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돼지국밥 근접샷
야들야들한 돼지 부속고기가 입맛을 돋운다.

밥 한 공기를 국밥에 말아, 깍두기 하나를 올려 먹으니 그 맛이 더욱 환상적이었다. 시원하고 아삭한 깍두기는 돼지국밥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잘 익은 김치 역시 훌륭한 조연이었다. 겉절이처럼 톡 쏘는 맛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숙성된 김치의 깊은 풍미가 국밥의 맛을 한층 끌어올렸다. 다만, 밥은 살짝 질다는 느낌이 들었다. 꼬들꼬들한 밥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테이블 한쪽에는 다진 파와 고추가 담긴 스테인리스 통이 놓여 있었다. 취향에 따라 국밥에 넣어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것이다. 나는 다진 파를 듬뿍 넣어 국물의 풍미를 더하고, 다진 고추를 살짝 넣어 칼칼한 맛을 더했다. 새우젓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새우젓 특유의 짭짤한 맛이 국물에 깊이를 더해줬다.

다진 양념을 넣은 돼지국밥
다진 양념과 고추를 넣어 더욱 풍성해진 맛

정신없이 국밥을 먹다 보니,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뜨거운 국물과 얼큰한 고추의 조화 덕분에 몸살 기운도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다. 뚝배기 바닥이 보일 때까지 국물을 남김없이 들이켰다. 마치 보약을 마신 것처럼, 속이 든든해지고 기운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 옆 벽면에는 메뉴판과 함께 TV가 걸려 있었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뉴스 화면은, 잠시나마 내가 현실 세계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식당 내부
소박한 분위기의 식당 내부 모습

계산을 마치고 식당 문을 나섰다. 여전히 바람은 차가웠지만, 아까와는 달리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이 이렇게 큰 힘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고흥순대국은 화려하거나 특별한 맛집은 아니었다. 어쩌면 동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식당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담긴 따뜻함과 푸짐함은, 아픈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마치 엄마가 끓여주는 집밥처럼, 정성 가득한 국물은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다시는 아프지 말자’라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앞으로 힘들 때마다 고흥순대국을 찾아, 따뜻한 국물로 위로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건대 근처에서 맛있는 순대국이나 돼지국밥 맛집을 찾는다면, 고흥순대국을 꼭 한번 방문해 보길 바란다. 분명 당신도 그 따뜻함에 반하게 될 것이다. 이 곳은 내 인생 순대국 탑 3 맛집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푸짐한 한 상 차림
돼지국밥 한 상 차림
테이블 세팅
테이블 위에 놓인 다양한 양념과 반찬
식당 외부
건물에 비친 식당 모습
메뉴판
벽에 붙은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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