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오래된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이번 주말에 시간 있나? 내가 진짜 ‘맛집’ 하나 알아놨는데, 같이 가지 않겠나?”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맛집’ 레이더는 언제나 옳았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은평구의 한 골목길 어귀에서 만나, 30년 가까운 세월을 품은 노포의 문을 열었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 빛바랜 벽지, 그리고 기름때가 묻은 듯한 환풍기까지. 첫인상은 요즘 흔히 보이는 세련된 고깃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정겹고 푸근한 느낌이랄까.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신식 에어컨의 쨍한 바람 대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풍겨오는 묘한 편안함이 있었다. 이런 곳이야말로 진정한 ‘맛집’의 아우라를 풍기는 법이지.
메뉴판은 단촐했다. 안창살과 토시살, 단 두 가지 부위만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이 집의 내공을 짐작하게 했다. ‘단 하나의 메뉴로 승부한다’는 장인 정신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우리는 안창살 2인분과 토시살 2인분을 주문했다. 유튜브에서 전직 농구선수까지 섭외하려다 거절당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라니,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주문이 끝나자, 밑반찬들이 하나둘씩 테이블 위에 놓였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소박한 찬들이었다. 젓가락이 쉴 새 없이 향했던 건, 묘하게 손맛이 느껴지는 깻잎 장아찌였다. 짭짤하면서도 향긋한 깻잎 향이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쌈무 대신 단무지를 무쳐 내는 것도 독특했다. 아삭한 식감과 새콤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느끼함을 잡아주는 데 제격이었다. 숯불이 들어오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안창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장님께서는 안창살을 내주시며, 고기의 상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약간의 갈변은 있지만, 마블링은 최상급이라고 자부하시는 모습이었다. 그의 말처럼, 안창살의 표면은 붉은빛과 흰색 마블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뜨겁게 달궈진 불판 위에 안창살을 올리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육즙이 솟아올랐다. 숯불 향이 은은하게 배어 들면서, 코를 자극하는 향긋한 냄새가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겉면이 살짝 익자마자, 우리는 안창살을 뒤집었다.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앞뒤로 살짝만 익혀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잘 익은 안창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을 가득 채웠고, 씹을수록 진한 육향이 뿜어져 나왔다. 안창살은 소의 횡격막 부위로, 특유의 깊은 풍미를 자랑한다고 한다. 간장 양념이 되어 있지 않아, 고기 본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기름장에 살짝 찍어 먹으니, 고소한 풍미가 더욱 살아나는 듯했다.

안창살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이번에는 토시살을 맛볼 차례였다. 토시살은 안창살과는 달리, 겉면에 갈변된 흔적이 전혀 없이 신선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정형 방식은 안창살과 비슷했지만, 토시살이 조금 더 길쭉하게 썰려 나온 것이 특징이었다. 토시살 역시 소 한 마리에서 얼마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라고 한다.

토시살을 불판 위에 올리자, 안창살 못지않은 풍성한 육즙이 흘러나왔다. 토시살은 소의 장을 받치고 있는 부위로, 안창살과 마찬가지로 진한 육향을 자랑한다고 한다. 실제로 맛을 보니, 안창살과 거의 흡사한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힘줄이 붙어 있어 안창살보다는 쫄깃함이 덜했지만, 훨씬 더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깻잎 장아찌에 싸서 먹으니, 토시살의 풍미가 한층 더 깊어지는 듯했다. 짭짤하면서도 향긋한 깻잎 향이 육즙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아삭한 단무지 무침과 함께 먹으니, 느끼함도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먹다 보니, 어느새 한 근에 가까운 고기가 뱃속으로 사라져 있었다. 한우 특수부위는 역시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름진 부위다 보니, 느끼함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집의 숨겨진 메뉴,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다.
사장님께서는 직접 소고기 자투리를 가져오셔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셨다.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로 볶은 김치볶음밥은 어떤 맛일까? 궁금증을 안고 한 입 맛보는 순간,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소기름에 볶아서 그런지, 돼지고기 김치볶음밥보다 훨씬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참기름을 살짝 둘러 고소한 풍미를 더하고, 깻잎에 싸 먹으니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이었다. 김치의 매콤함이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면서, 나는 이곳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뛰어난 품질의 고기, 저렴한 가격,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특히, 사장님의 푸근한 인심과 정겨운 분위기는,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을 선사했다.
물론, 1인분에 3만원이 넘는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응암동이라는 위치를 감안하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최고급 한우 특수부위를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메리트다. 29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온 노포의 감성과, 사장님의 따뜻한 정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하고.
다음에 또 방문할 의향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은평구에서 제대로 된 안창살을 맛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곳을 방문해보시길 추천한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에 휩싸였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노포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진정한 ‘맛집’ 탐방의 묘미가 아닐까. 다음에는 또 어떤 ‘맛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