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향기가 밴 부산 중앙동 노포, 뚱보집에서 맛보는 쭈꾸미의 추억 여행

오랜만에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드나들던 부산 중앙동의 작은 쭈꾸미 골목, 그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뚱보집’의 변치 않는 맛을 다시 느껴보는 것이었다. 잊고 지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기차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처럼 하나둘씩 떠올랐다. 왁자지껄한 사람들, 코를 찌르는 연탄불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 혀끝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쭈꾸미의 매콤한 맛…

부산역에 도착해 곧장 중앙동으로 향했다. 예전의 쭈꾸미 골목은 많이 변해 있었지만, 낡은 간판에 ‘뚱보집’이라는 세 글자는 여전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실비집을 비롯해 여러 쭈꾸미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지만, 이제는 뚱보집만이 홀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씁쓸하게 느껴졌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 벽에 붙은 빛바랜 사진들, 그리고 시끌벅적한 손님들의 목소리까지, 모든 것이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연탄불 위에서 쭈꾸미를 굽는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테이블마다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풍경은 이곳이 단순한 식당이 아닌, 삶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공간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연탄불에 구워진 쭈꾸미 볶음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진 쭈꾸미 볶음은 뚱보집의 대표 메뉴다.

자리에 앉자마자 쭈꾸미(18,000원), 보쌈(소, 18,000원), 록빈 2조각(10,000원)을 주문했다. 뚱보집에 오면 항상 이렇게 시키는 것이 나만의 불문율처럼 굳어져 버렸다. 잠시 후, 기본 찬들이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콩나물밥, 담백한 맛이 일품인 콩비지, 그리고 서비스로 나오는 시원한 알탕까지, 하나하나 정갈하면서도 소박한 맛이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알탕은 뜨끈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는데, 소주 한 잔을 절로 부르는 마성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쭈꾸미가 나왔다. 연탄불에 직접 구워 불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 쭈꾸미는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져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젓가락으로 쭈꾸미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니, 쫄깃쫄깃한 식감과 함께 매콤달콤한 양념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예전보다 쭈꾸미 크기가 조금 작아진 듯했지만, 변함없는 맛은 여전했다. 예전에는 국내산 낙지를 사용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인도네시아산을 쓴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숯불 향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매콤한 양념은 여전히 훌륭했다.

뚱보집의 쭈꾸미는 단순히 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은은한 단맛과 감칠맛이 어우러져 묘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지코바 치킨과 비슷한 양념 맛이라고 할까.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맵기였다. 쭈꾸미를 마요네즈에 콕 찍어 먹으니 매운맛은 중화되고 고소한 풍미가 더해져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쭈꾸미 볶음
매콤달콤한 양념과 쫄깃한 식감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다음으로 맛본 것은 뚱보집의 또 다른 명물, 보쌈이었다. 부드럽게 잘 삶아진 돼지고기 삼겹살과 아삭하고 시원하게 익은 김치, 그리고 탱탱한 두부가 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겉모습은 평범해 보이지만, 뚱보집 보쌈의 진가는 김치에 있다. 보쌈김치는 겉절이처럼 신선하고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었는데, 적당히 매콤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느껴졌다. 돼지고기, 두부와 함께 김치를 곁들여 먹으니, 입안에서 환상적인 조화가 펼쳐졌다. 특히 김치 안에는 오징어가 들어 있어 씹는 재미를 더했다.

돼지고기는 잡내 없이 깔끔했고,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도 적절했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해서 김치와 함께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가격 대비 양이 조금 적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퀄리티만큼은 확실히 보장된 메뉴였다.

보쌈과 기본찬이 차려진 테이블
보쌈김치는 겉절이처럼 신선하고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다.

마지막으로 맛본 것은 록빈, 새우가 들어간 빈대떡이었다. 록빈은 뚱보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라고 해서 기대감이 컸다. 갓 구워져 나온 록빈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는데, 씹을 때마다 새우의 풍미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록빈 안에는 새우 외에도 양파, 야채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 있어 다채로운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마치 야채튀김과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먹다 보면 양파의 향긋함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쭈꾸미의 매운맛을 록빈으로 달래주니, 끊임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록빈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름에 절여져 느끼해질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록빈을 주문할 때는 2개보다는 4개를 시키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둘이서 먹기에는 2개도 충분한 양이었다. 예전에는 록빈을 ‘새빈’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지금은 록빈이라는 이름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듯했다.

노릇하게 구워진 록빈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록빈은 뚱보집의 시그니처 메뉴다.

식사를 하는 동안, 주변 테이블에서는 정겨운 부산 사투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가족 외식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혼자서 조용히 술을 마시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뚱보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 또한 뚱보집에서의 추억을 되새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식사를 즐겼다.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서려는데, 밖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웨이팅을 하고 있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뚱보집의 인기는 여전한 듯했다. 하지만 기다려서 먹을 정도의 맛집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쭈꾸미와 록빈은 분명 맛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한 맛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뚱보집을 찾는 이유는, 아마도 맛뿐만 아니라 이곳만이 지닌 분위기와 추억 때문일 것이다.

뚱보집은 세련된 인테리어나 훌륭한 서비스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화장실도 깨끗하다고 말하기 어렵고, 직원들은 친절하지만 무뚝뚝한 편이다. 하지만 노포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와 저렴한 가격, 그리고 푸짐한 인심은 뚱보집의 가장 큰 매력이다. 특히 비 오는 날, 뚱보집에서 쭈꾸미에 소주 한잔 기울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예전에 비해 음식의 퀄리티가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쭈꾸미는 조금 질겼고, 콩나물밥은 질척거렸으며, 록빈은 설익은 듯한 느낌이었다. 가격이 오른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예전에는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즐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뚱보집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곳이자,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뚱보집은 단순한 맛집이 아닌, 시간과 추억이 쌓여 만들어진 부산의 소중한 유산이다. 앞으로도 뚱보집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과 행복을 선사해주기를 바란다. 다음 부산 여행 때도 나는 어김없이 뚱보집을 찾을 것이다. 그곳에서 변치 않는 맛과 정겨운 분위기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보쌈, 두부, 김치가 한 접시에 담겨 나온 모습
보쌈은 돼지고기, 두부와 김치의 조화가 훌륭하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뚱보집에서 맛봤던 쭈꾸미의 매콤한 향이 잊혀지지 않았다. 입안에는 아직도 록빈의 고소한 풍미가 남아 있는 듯했다. 뚱보집은 나에게 단순한 식당이 아닌,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맛집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정겨움은 분명 존재했다. 다음 부산 여행 때도 나는 어김없이 뚱보집을 찾을 것이다. 그곳에서 변치 않는 맛과 정겨운 분위기를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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