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 맛을 찾아 용인 고기리로 향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들어가니, 마치 요새처럼 돌담이 둘러쳐진 식당이 나타났다. ‘고기리막국수’라는 간판이 정갈하게 새겨진 모습이, 숨겨진 보물을 찾아온 듯한 설렘을 안겨주었다.
돌담을 따라 놓인 계단을 조심스레 밟아 올라갔다. 촘촘한 철망 안에 채워진 크고 작은 회색빛 돌들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벽은 묵직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나는 이미 막국수의 고소한 향에 취해 있었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예상대로 웨이팅이 있었다. 하얀색 플라스틱 의자들이 옹기종기 놓인 대기석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들 저마다의 기대를 품은 얼굴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나 또한 그 기대에 부응하듯, 20분 정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식당 내부는 생각보다 넓고 깔끔했다. 나무로 짜여진 격자 천장이 눈에 띄었고, 은은한 조명이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종업원분들은 모두 하얀 유니폼을 입고 있었는데,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테이블 간 간격도 넓어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단연 들기름 막국수. 100% 메밀로 만든 면에 들기름과 김 가루, 깨를 듬뿍 뿌려 고소함을 극대화했다고 한다. 물 막국수와 비빔 막국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들기름 막국수에 집중하기로 했다. 수육도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아, 함께 주문했다. 메뉴판 한켠에는 ‘들기름 막국수는 2012년 고기리막국수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집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주문을 마치자, 따뜻한 면수와 함께 시원한 배추 물김치가 나왔다. 붉은 고춧가루가 살짝 들어간 물김치는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니, 새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었다. 슴슴한 듯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는 것이, 막국수와의 조화가 기대되는 맛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들기름 막국수가 나왔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막국수는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모습이었다. 100% 메밀로 만들었다는 면은 얇고 가늘었지만, 찰기가 느껴졌다. 그 위에는 진한 향을 풍기는 들기름과 고소한 김 가루, 깨가 듬뿍 뿌려져 있었다.

젓가락으로 면을 살살 비벼 한 입 맛보니,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100% 메밀면이라 그런지, 툭툭 끊어지는 듯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었다. 들기름의 풍미와 김 가루, 깨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정말 환상적인 맛을 만들어냈다. 특히 들기름은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어느 정도 면을 먹다가, 남은 면에 시원한 육수를 부어 먹으니 또 다른 맛이 느껴졌다. 슴슴한 듯하면서도 감칠맛이 느껴지는 육수가, 들기름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더욱 풍성한 맛을 만들어냈다. 마치 평양냉면을 먹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육수까지 들이켜니, 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들기름 막국수를 정신없이 먹고 있을 때, 수육이 나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수육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적당한 두께로 썰어져 나온 수육은 젓가락으로 집으니 부드럽게 찢어졌다. 새우젓에 살짝 찍어 입에 넣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한 식감이 느껴졌다.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수육을 막국수와 함께 먹으니, 그 맛이 배가 되는 듯했다. 쫄깃한 면과 부드러운 수육의 조화는 정말 훌륭했다. 특히 수육의 담백함이 들기름 막국수의 고소함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밑반찬은 배추 물김치 하나뿐이었지만, 막국수와 수육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시원하고 새콤한 물김치는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역할을 했고, 덕분에 막국수와 수육을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니, 정말 배가 불렀다. 하지만 입안에 남은 들기름의 고소한 여운 때문에, 추가로 막국수를 주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보니, 벽 한쪽에 허영만 작가의 싸인이 걸려 있었다. ‘식객’으로 유명한 허영만 작가도 이곳의 단골이라고 하니, 더욱 신뢰가 갔다. 다음에는 허영만 작가처럼 동치미 막국수를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당을 나서니,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들기름 막국수의 고소한 향이 가득 남아 있었다. 용인 고기리는 맛있는 막국수와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겼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야경은 아름다웠고, 내 마음은 평온했다. 오늘 맛본 들기름 막국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맛으로 기억될 것 같다. 다음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 다시 방문해야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긴 웨이팅과 좁은 도로였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맛있는 막국수였기에, 후회는 없었다. 특히 막국수의 제철은 겨울이라고 하니, 날씨가 더 추워지면 다시 한번 방문해야겠다. 그때는 동치미 막국수도 꼭 먹어봐야지.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정리하며 오늘 경험했던 모든 순간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 하얀 유니폼을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종업원들, 그리고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들기름 막국수의 고소한 풍미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저녁 식사였다.

‘고기리막국수’는 단순한 식당이 아닌, 정성과 추억이 깃든 특별한 공간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아름다운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곳이었다. 용인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돌담 너머 풍경처럼, 소박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고기리막국수. 그 고소한 유혹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을 것 같다. 오늘 맛본 들기름 막국수를 생각하며, 다음 방문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