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낡은 나무 간판 아래 자리 잡은 작은 분식집. 영천 서문육거리, 그 이름만으로도 정겨움이 묻어나는 골목 어귀에 숨겨진 맛집, ‘서문분식’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디지털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가게 문을 열자, 예상했던 대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번쩍이는 새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9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푸근한 분위기가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 빛바랜 벽지, 그리고 정겨운 사투리가 오가는 소리까지, 모든 것이 어린 시절 동네 분식집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마치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듯한 포근함이랄까.
벽 한켠에는 생활의 달인 인증패가 눈에 띄었다. 멸치김밥 달인이라니,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잔치국수와 김밥이 유명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왔지만, 칼국수 역시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잔치국수와 김밥을 묶은 세트 메뉴 하나와 칼국수를 추가로 주문했다. 사장님께서는 능숙한 솜씨로 주문을 받으시더니, 주방에 “세트 하나, 칼국수 하나!”라고 외치셨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먼저 잔치국수. 멸치 육수의 은은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뽀얀 국물 위로 김 가루와 다진 채소가 소담하게 올려져 있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온 모습은 투박했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사진에서 보았던 것처럼, 국수 위에는 김 가루와 함께 다진 채소가 넉넉히 올려져 있어 먹음직스러웠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어 한 입 맛보니, 탱글탱글한 면발이 입안에서 기분 좋게 춤을 췄다. 멸치 육수는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을 냈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닐 텐데,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알맞은 간이 입맛을 돋우었다.

곧이어 멸치김밥이 나왔다. 김밥 위에는 볶은 멸치가 듬뿍 올려져 있었다. 멸치김밥이라니, 흔한 메뉴는 아니었기에 더욱 기대감이 커졌다. 젓가락으로 김밥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멸치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멸치의 살짝 매콤한 맛이 김밥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질릴 틈 없이 계속 먹게 만들었다. 김밥 속 재료는 평범했지만, 멸치와의 조화는 상상 이상이었다. 멸치가 김밥의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칼국수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멸치 육수를 베이스로 한 칼국수 국물은 잔치국수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진한 맛이 났다. 쫄깃한 면발은 후루룩 넘어가는 식감이 좋았다. 칼국수 역시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정성껏 끓여낸 육수와 면발의 조화가 훌륭했다.

서문분식의 음식은 화려하거나 세련된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맛은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었다. 마치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따뜻하고 푸근한 느낌이랄까.
음식을 먹는 동안, 가게 안에는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혼자 와서 잔치국수를 후루룩 비우고 가는 할아버지, 아이와 함께 김밥을 먹는 젊은 엄마, 친구들과 함께 칼국수를 나눠 먹는 학생들… 그들의 모습에서 서문분식이 오랫동안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사장님께서 환한 미소로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물어보셨다. “네, 정말 맛있었어요. 특히 멸치김밥은 정말 최고였어요!”라고 대답하자, 사장님께서는 쑥스러운 듯 웃으셨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 문을 나서면서,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졌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문분식은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와 추억을 함께 파는 곳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정겨운 음식과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영천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한 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화려한 맛집은 아니지만, 분명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