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속 숨겨진 보석, 대전 왕손곱창에서 맛보는 인생 곱창전골 지역 맛집 기행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묘하게 곱창전골이 당겼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 얼큰하고 진한 국물, 야들야들한 곱창의 풍미를 드디어 오늘 맛보리라 다짐하며 대전 대화공단으로 향했다. 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다소 삭막한 풍경 속에서 과연 맛집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잠시 들었지만, 이미 마음은 뜨거운 전골 냄비 속에 빠져 있었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에 다다르자, 낡은 간판의 ‘왕손곱창’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모르게 정겨운 느낌이 드는 외관이었다. 커다란 글씨로 쓰인 간판과 그 아래 ‘623-5928’이라는 전화번호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인상을 풍겼다. 붉은색과 흰색의 조화가 강렬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공단 한켠에 자리 잡은 이곳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왕손곱창 간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왕손곱창의 외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대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나를 반겼다. 테이블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퇴근 후 소주 한잔 기울이는 직장인들의 활기찬 대화 소리가 정겹게 느껴졌다. 절반 이상의 좌석이 좌식 테이블로 되어 있다는 점이 독특했는데, 신발을 벗고 편안하게 앉으니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테이블 석도 4개 정도 마련되어 있어, 좌식이 불편한 사람들도 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겠다. 나는 테이블 자리에 겨우 앉을 수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곱창전골, 염통구이, 순대가 주력 메뉴인 듯했다. 곱창구이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했다. 메뉴를 고민하다가, 곱창전골 2인분과 염통구이를 주문했다. 잠시 후,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 깍두기와 김치가 나왔는데, 특히 깍두기는 시원하면서도 적당히 익어 전골과 함께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염통구이가 먼저 나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선홍빛 염통의 자태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신선함이 느껴졌다. 불판 위에 염통을 올리자,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앞, 뒷면을 노릇하게 구워 한 입 베어 무니,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었다. 신선한 한우 염통이라 그런지, 잡내 하나 없이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22,000원이라는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왕손곱창 순대
푸짐한 양을 자랑하는 왕손곱창의 순대

염통구이를 어느 정도 먹어갈 때쯤, 오늘의 주인공인 곱창전골이 등장했다. 큼지막한 냄비에 곱창, 채소, 쑥갓이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쑥갓 위에 소복이 쌓인 깻잎이 인상적이었다. 깻잎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식욕을 더욱 자극했다. 붉은 양념이 밴 국물은 보기만 해도 얼큰해 보였다.

왕손곱창 곱창전골
푸짐한 곱창과 깻잎이 인상적인 곱창전골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냄비 안에서 진한 곱창 향이 뿜어져 나왔다. 국물을 한 입 맛보니, 깊고 풍부한 맛에 감탄했다.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깻잎과 방아잎이 들어가 국물 맛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곱창은 뉴질랜드산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잡내 없이 쫄깃하고 고소했다. 곱이 많이 빠져나간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지만, 국물 맛으로 충분히 커버가 되었다. 안에 들어간 쫄면처럼 쫄깃한 당면도 별미였다.

왕손곱창 곱창전골 근접샷
얼큰하고 깊은 맛이 일품인 곱창전골 국물

전골을 어느 정도 먹고 난 후, 볶음밥을 주문했다. 볶음밥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고 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남은 국물에 밥, 김치, 채소, 김 가루 등을 넣고 볶아주는데, 그 비주얼부터가 예술이었다. 밥알 하나하나에 양념이 잘 배어들어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환상적이었다. 특히, 볶음밥을 남은 국물에 살짝 적셔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볶음밥은 정말 놓칠 수 없는 메뉴다.

왕손곱창 볶음밥
마무리로 꼭 먹어야 하는 환상적인 볶음밥

배가 불렀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아 모둠 순대 작은 사이즈를 추가로 주문했다. 직접 만든다는 순대는 일반 야채순대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찰순대를 넣어주는 흉내만 낸 순대국밥집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순대 특유의 풍미가 살아있고, 쫄깃한 식감이 좋았다. 특히 김치와 생마늘을 곁들여 상추에 싸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다만, 순대에서 돼지 누린내가 살짝 나는 점은 아쉬웠다.

왕손곱창 곱창전골 끓는 모습
보글보글 끓는 곱창전골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차 공간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대화공단 특성상 도로변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점심시간에는 근처 교회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요일에 따라 교회 주차도 제한이 있을 수 있으니 참고해야 한다. 그리고 식당이 오래된 곳이라 깔끔한 분위기는 아니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테이블에 펼쳐놓은 천에 전골 국물이 묻어 끈적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했다. 곱창전골 2인분, 염통구이, 모둠 순대 작은 사이즈, 볶음밥까지 푸짐하게 먹었는데도 5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나왔다. 가성비 최고의 맛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장님은 친절하셨지만, 워낙 바쁘셔서 세심한 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왕손곱창은 대화공단이라는 다소 낯선 장소에 있지만, 맛 하나만으로 모든 단점을 잊게 만드는 곳이었다. 화려한 인테리어는 없지만, 정겨운 분위기와 푸짐한 인심,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맛이 이곳을 대전의 숨겨진 곱창전골 맛집으로 만들었다. 퇴근길에 소주 한잔 기울이기에도 좋고,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외식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다음에는 꼭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영업시간이 유동적이라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저녁 9시에 마감한다고 했는데, 사장님 사정에 따라 더 일찍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한다. 특히 주말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많으니, 방문 전에 미리 전화로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3시부터 5시까지는 브레이크 타임이니, 이 시간대는 피해서 방문해야 한다.

왕손곱창에서 맛있는 곱창전골과 염통구이를 먹고 나오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공단의 차가운 바람도 잊게 만드는 뜨거운 맛이었다. 대전 지역에 이런 맛집이 숨어있었다니,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곱창전골이 생각날 때면, 망설임 없이 왕손곱창을 찾을 것이다.

왕손곱창 라면사리 추가
곱창전골에 라면사리를 추가하면 더욱 푸짐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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