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붉은 노을이 도시를 감싸 안을 때, 남편의 갑작스러운 굴비 타령이 시작되었다. 사실 굴비는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잔가시가 많아 먹기도 불편하고, 특별한 맛을 느끼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남편은 굴비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한다. 그의 확고한 취향을 알기에, 나는 군말 없이 그의 굴비 로드에 동행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영광굴비, 남편의 오랜 단골집이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예감은 했다. 퇴근 시간과 맞물려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붉은색 브레이크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모습은 마치 도시의 혈관이 막힌 듯 답답했다. 에서 보듯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는 남편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 미소는 마치 ‘오늘 굴비, 제대로 즐겨보자!’라고 외치는 듯했다.
드디어 도착한 영광굴비 식당. 에서 보이는 식당은 생각보다 소박한 모습이었다. 낡은 간판과 빛바랜 외관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낡음 속에서 왠지 모를 깊은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짭짤한 굴비 굽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휴, 오늘도 손님이 많네.” 남편의 말처럼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나무 테이블과 의자는 정겹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에서처럼 테이블 위에는 스테인리스 물통과 냅킨, 수저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남편은 능숙하게 굴비 정식을 주문했다. 나는 메뉴판을 슬쩍 훑어봤지만, 역시나 굴비 외에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굴비 정식이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에서 보이는 것처럼, 뽀얀 쌀밥과 함께 김치, 나물, 젓갈 등 다양한 밑반찬들이 푸짐하게 나왔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굴비가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등장했다.
솔직히 말하면, 굴비의 첫인상은 그다지 강렬하지 않았다. 에서도 보이듯이, 앙상한 멸치처럼 바짝 마른 모습은 딱히 식욕을 자극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굴비를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는 능숙한 솜씨로 굴비의 뼈를 발라내고 살점을 밥 위에 올려 내게 건네주었다.
“자, 한번 먹어봐.”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굴비를 한 입 먹어봤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생각보다 비린 맛도 없고, 밥과 함께 먹으니 꽤 괜찮았다. 굴비 특유의 꼬들꼬들한 식감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굴비를 조금씩 뜯어 밥 위에 올려 먹기 시작했다.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나물도 굴비와 잘 어울렸다. 특히 짭짤한 굴비와 매콤한 김치의 조합은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남편은 연신 굴비를 뜯어 내 밥 위에 올려주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어때, 맛있지?” 남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굴비가 엄청나게 맛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남편과 함께하는 식사라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더 맛있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면서 남편은 굴비에 얽힌 추억들을 이야기해줬다. 어릴 적 할머니가 구워주셨던 굴비, 아버지와 함께 낚시로 잡았던 굴비 등등. 그의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굴비를 음미했다.
신기하게도 굴비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맛있어졌다. 처음에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굴비가 이제는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 꼬들꼬들한 식감, 그리고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라는 점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굴비 한 마리를 깨끗하게 해치웠다. 배가 불렀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굴비를 한 마리 더 시켜달라고 졸랐다. 남편은 나의 변화에 놀라면서도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 번째 굴비는 처음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나는 굴비를 뼈째로 씹어 먹었다. 굴비 뼈는 바삭바삭하고 고소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당신, 정말 굴비 좋아하게 됐나 보네.” 남편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당신 덕분인 것 같아.”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활짝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하늘은 어느새 짙은 남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집으로 걸어갔다. 굴비를 먹고 난 후라 그런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굴비 생각이 계속 났다. 나는 남편에게 굴비를 사다가 냉동실에 쟁여놓자고 제안했다. 남편은 뛸 듯이 기뻐하며 당장 내일 굴비를 사러 가자고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왜 나는 굴비를 싫어했을까? 어쩌면 굴비 자체의 맛보다는 굴비에 얽힌 추억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남편과 함께 굴비를 먹으면서 그의 추억을 공유하고, 굴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된 것 같다.
이제 굴비는 나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닌, 남편과의 사랑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앞으로도 남편과 함께 굴비를 먹으면서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남편처럼 굴비에 얽힌 추억들을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영광굴비. 남편에게는 추억의 맛이고, 나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굴비의 참맛을 알게 해준 남편에게 감사하며, 앞으로도 굴비처럼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사랑을 이어가고 싶다. 어쩌면, 굴비는 우리 부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울푸드가 될지도 모르겠다. 불가사의했던 남편의 굴비 사랑, 이제는 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영광굴비, 그 이름처럼 우리 부부에게 영광스러운 추억을 선물해준 영광의 맛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