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 구경을 하던 날, 국수 한 그릇을 시켜 후루룩 맛보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쨍한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날, 나는 그 시절의 향수를 찾아 거제 지역의 맛집, ‘본가밀면’으로 향했다.
가게 앞에 다다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에는 ‘본가밀면’이라는 정겨운 글씨와 함께 전화번호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빨간색 어닝이 햇빛을 가려주고 있었고, 그 아래로는 밀면 사진이 붙어 있어 침샘을 자극했다. 가게 옆으로는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편리하게 차를 댈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겨운 풍경이 펼쳐졌다. 테이블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주문에 분주한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한쪽에서는 젊은 아르바이트생이 능숙한 솜씨로 밀면을 삶아내고 있었다. 가게 안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니, 물밀면과 비빔밀면, 그리고 사리가 전부였다. 메뉴가 단출해서 오히려 전문성이 느껴졌다. 나는 고민 끝에 시원한 물밀면을 주문했다. 곱빼기를 시킬까 잠시 망설였지만, 워낙 양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통으로 결정했다.

주문한 물밀면이 나오기 전, 따뜻한 육수가 먼저 제공되었다. 멸치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육수는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스테인리스 컵에 담겨 나온 육수를 홀짝이며, 밀면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밀면이 나왔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온 밀면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뽀얀 밀면 위에 빨간 양념장이 듬뿍 올려져 있었고, 그 위로는 삶은 계란 반쪽과 얇게 썰린 돼지고기 수육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채 썬 오이와 무 절임도 넉넉하게 들어 있어 다채로운 색감을 자랑했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저어 양념장이 잘 섞이도록 했다. 면발은 탱글탱글했고, 육수는 살얼음이 동동 떠 있어 더욱 시원하게 느껴졌다. 드디어 첫 입을 맛보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시원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육수는 은은한 한약재 향이 느껴지는, 깊고 깔끔한 맛이었다. 너무 달지도, 너무 시지도 않은 딱 적당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면발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고, 입안에서 착 감기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양념장은 매콤하면서도 달콤했는데, 과하지 않아 밀면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함께 올려진 고기 수육은 얇게 썰려 있어 면과 함께 먹기에 부담이 없었다. 쫄깃한 면발과 부드러운 수육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아삭한 오이와 무 절임은 입안을 상쾌하게 만들어주어 밀면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삶은 계란은 고소했고, 매콤한 양념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먹다 보니 양이 정말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보통을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의 곱빼기만큼 푸짐했다. 하지만 워낙 맛있어서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마지막 한 가닥까지 깨끗하게 비워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온몸에 시원한 기운이 감돌았다. 더위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계산을 하면서, 노부부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를 건넸다. 따뜻한 미소로 화답해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본가밀면은 단순히 밀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정과 추억을 함께 파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한 인심과 변함없는 맛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알 수 있게 했다. 거제에 방문한다면, 꼭 한번 들러 맛집의 진정한 의미를 느껴보길 바란다.

가게를 나서면서, 다시 한번 간판을 올려다봤다. 낡은 간판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그만큼 깊은 맛과 정이 느껴졌다. 나는 다음에도 꼭 다시 방문하리라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돌아오는 길, 시원한 밀면 덕분에 기분 좋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거제의 아름다운 풍경은 덤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따뜻한 정이 함께했던 하루였다. 본가밀면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주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