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살, 풋풋했던 시절부터 묵밥 한 그릇에 위로받았던 식당이 있다. 2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소식에, 늦가을 밤 부석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순흥이라는 작은 동네, 어둠이 짙게 드리운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저 멀리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정겨운 기와집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앞에는 메뉴와 함께 음식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사진 속 묵밥은 투박하지만 정갈했고,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로 된 기다란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소박한 공간이 펼쳐졌다. 벽에는 오래된 사진과 그림들이 걸려 있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묵밥을 주문했다. 잠시 후,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묵밥과 쌀밥,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이 나무 쟁반 위에 정갈하게 놓여 나왔다. 뽀얀 메밀묵과 잘게 썰린 김치, 고소한 김 가루가 소담하게 담겨 있는 묵밥. 그 위에 뿌려진 깨소금이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이게 했다. 묵밥과 함께 나온 쌀밥은 찰기가 느껴지는 조밥이었다.
젓가락으로 묵을 휘저어 한 입 맛보니, 쌉쌀하면서도 담백한 메밀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묵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과 시원한 국물이 어우러져,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에 언 몸을 사르르 녹여주는 듯했다. 특히, 조밥과 함께 먹으니 든든함까지 더해져 더욱 만족스러웠다.
반찬으로 나온 생선포는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묵밥과 함께 먹으니, 슴슴한 묵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곁들여 나온 김치는 아삭하고 시원했으며, 묵밥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옆 테이블에서는 네 명의 손님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중 한 부부의 아내분은 입맛에 맞지 않는 듯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마치 평양냉면을 싫어하는 사람이 억지로 먹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게 묵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애써 무시하며, 묵밥 맛에 집중했다.
사실 묵을 그리 즐겨 먹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의 묵밥은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쌉쌀하면서도 담백한 묵의 맛, 시원한 국물, 그리고 정갈한 반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편안하고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질 듯 빛나고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 속 깊숙이 스며드는 듯했지만, 왠지 모르게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래도록 잊지 못할 추억을 마음속에 새겼다.
영주는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단종 복위를 꿈꾸던 선비들이 죽임을 당한 후, 200여 년간 마을 사람들이 먹고살기 어려워졌을 때 묵밥이 발전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쩌면 이 묵밥에는, 선비들의 넋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식당은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듯한 푸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러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넓은 마당에는 후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겨울이라 그런지,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식당 건물 처마 아래에는 ‘전통묵밥 10,000원’이라고 적힌 메뉴판이 걸려 있었다. 투박한 글씨체와 빛바랜 색깔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메뉴는 단 하나, 묵밥뿐이다. 그만큼 묵밥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식당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소품들이 놓여 있었다. 낡은 농기구, 빛바랜 사진, 오래된 가구 등, 마치 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소품들은 식당의 분위기를 더욱 정겹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식당 마당 한쪽에는 작은 정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정자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식사를 마친 후 담소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기에 좋았다. 정자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이곳은 단순히 묵밥을 파는 식당이 아닌, 추억과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다. 28년 전, 스물두 살의 나는 이곳에서 묵밥 한 그릇을 먹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희미해진 기억이지만, 왠지 모르게 뭉클한 감정이 느껴졌다.

부석사를 방문하거나 영주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곳에서 묵밥 한 그릇을 맛보는 것을 추천한다. 단순한 음식을 넘어, 영주의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28년 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나는 다시 한번 이곳을 찾을 것을 다짐했다. 변함없는 맛과 따뜻한 정이 그리워질 때면, 언제든 이곳으로 달려와 묵밥 한 그릇을 비워낼 것이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나는 묵밥의 여운을 곱씹었다. 쌉쌀하면서도 담백한 맛, 시원한 국물, 그리고 정갈한 반찬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내 마음속에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영주 땅에 스며든 선비의 정신과 애환, 그리고 28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맛이었다. 단순한 묵밥 한 그릇이 아닌, 역사와 추억을 맛본 특별한 경험이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 변함없는 맛과 따뜻한 정을 느껴보고 싶다. 그때는 또 어떤 새로운 추억이 내 마음속에 새겨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