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퇴근 후 발걸음은 자연스레 서대문역 향했다. 오늘따라 매콤한 쭈꾸미가 간절하게 당겼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그 맛, 25년 전통의 삼오쭈꾸미를 찾아 좁다란 골목길을 헤집고 들어갔다.
골목 어귀에 다다르자, 낡은 간판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25년 전통 쭈꾸미’라는 문구가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간판 옆으로 빼꼼히 보이는 가게의 모습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마치 오랜 친구 집에 놀러 가는 듯한 기분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게 문을 열자,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쭈꾸미를 구워 먹는 직장인들의 활기찬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다. 5시 오픈인데도 불구하고 6시 반쯤 되니 이미 주변 직장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다행히 한 테이블이 남아있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쭈꾸미 구이와 쭈꾸미 전골이 대표 메뉴였다. 구이와 전골 모두 포기할 수 없었기에, 쭈꾸미 구이 2인분과 쭈꾸미 전골 2인분을 주문했다. 메뉴가 모두 2인분 이상부터 주문 가능하다는 점이 살짝 아쉬웠지만, 워낙 쭈꾸미를 좋아하니 괜찮았다. 게다가 나중에는 볶음밥도 꼭 먹어봐야지 다짐했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본 찬들이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콩나물, 김치, 깻잎, 마늘, 쌈장 등 소박하지만 쭈꾸미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는 녀석들이었다. 특히 시원한 콩나물국은 매운 쭈꾸미의 맛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기본으로 나오는 콩나물국 사진이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쭈꾸미 구이가 등장했다. 빨갛게 양념된 쭈꾸미가 볼록한 불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군침이 절로 돌았다. 쭈꾸미는 이미 구워져서 나오기 때문에, 약불에 살짝 데워 먹으면 된다는 점이 편리했다.

본격적으로 쭈꾸미를 맛볼 차례. 잘 익은 쭈꾸미 한 점을 깻잎 위에 올리고, 콩나물과 마늘, 쌈장을 듬뿍 올려 크게 한 쌈 싸서 입안으로 가져갔다. 쫄깃쫄깃한 쭈꾸미의 식감과 매콤달콤한 양념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며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이 맛이야!
매운맛이 올라올 때쯤 시원한 콩나물국을 한 모금 들이켜니, 입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쉴 새 없이 쭈꾸미를 쌈 싸 먹으며, 친구와 연신 “맛있다”를 외쳤다. 쭈꾸미는 탱글탱글했고, 양념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어느 정도 쭈꾸미 구이를 즐긴 후, 쭈꾸미 전골을 주문했다. 맑은 육수에 쭈꾸미와 각종 채소가 듬뿍 들어간 전골은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보글보글 끓는 전골을 보니, 술을 안 시킬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잘 끓여진 쭈꾸미 전골을 맛보니, 맑고 시원한 국물이 속을 확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쭈꾸미 역시 쫄깃쫄깃했고, 콩나물과 미나리의 아삭한 식감이 더해져 더욱 풍성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쭈꾸미 전골에 라면 사리를 추가해서 먹으니, 마치 나가사키 짬뽕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쭈꾸미 전골을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하니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다. 역시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볶음밥을 주문했다. 쭈꾸미 구이 양념에 밥과 김, 채소를 넣고 볶아 만든 볶음밥은 정말 꿀맛이었다. 살짝 눌어붙은 볶음밥을 긁어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배가 불렀지만, 볶음밥을 남길 수는 없었다. 싹싹 긁어먹으니, 정말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삼오쭈꾸미는 45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고 한다. 오래된 한옥 내부에 주방과 붙어 있는 홀에는 테이블이 3~4개 정도, 그리고 작은 방 2개에는 좌식 식탁 10여 개가 전부라고 하니, 그 세월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 실내 공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좁고 운신이 불편한 감은 있었다. 하지만 쭈꾸미 맛 하나는 정말 최고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양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다는 것이다. 2명이 가서 4인분은 먹어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리고 태국산 쭈꾸미를 사용한다는 점도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맛 하나는 정말 훌륭했다. 쭈꾸미의 신선도도 좋았고, 양념도 과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특히 쭈꾸미 구이를 먹고 나서 쭈꾸미 전골로 마무리하는 코스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쭈꾸미 탕에 라면 사리를 넣어 먹으면, 술안주로도, 해장으로도 손색이 없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는데,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서비스가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사장님이 불친절하다는 리뷰가 있었다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친절하고 유쾌하신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삼오쭈꾸미는 서대문역 근처에서 가성비 좋은 맛집으로 손꼽힌다. 쭈꾸미 볶음, 쭈꾸미 전골 모두 맛있는 곳이다. 특히 깻잎에 쭈꾸미와 밥을 쌈 싸 먹는 것은 최고의 조합이다. 쭈꾸미 생각날 때 가끔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 서대문에서 술 한잔하기 딱 좋은 곳이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며, 오늘 저녁 삼오쭈꾸미에서 맛본 쭈꾸미의 맛을 되새겼다. 쫄깃쫄깃한 쭈꾸미의 식감과 매콤달콤한 양념, 시원한 쭈꾸미 전골 국물,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저녁이었다. 다음에 또 서대문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다시 삼오쭈꾸미에 들러 쭈꾸미 구이와 전골을 맛봐야겠다. 그때는 꼭 5인분을 먹어야지.

돌아오는 길, 문득 안교수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제분이 도레이 코리아에 취직했다가 골프웨어 런칭으로 회사를 창업했다는 이야기. 이름도 모르는 브랜드를 누가 사 입을지 걱정된다는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부디 성공하시길 응원하며, 다음에는 안교수님과 함께 삼오쭈꾸미에서 소주 한잔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쭈꾸미 맛이 추억이 아닌, 현재의 행복으로 다가오기를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