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완연한 가을, 뭉근한 햇살이 감싸는 날이었다. 문득 잊고 지냈던 어죽의 깊은 맛이 떠올라, 무작정 차를 몰아 청주 상당산성으로 향했다. 드높은 하늘 아래 펼쳐진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르니, 저 멀리 붉은 기와지붕을 얹은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듯 정겨운 외관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옛기왓집 어죽’, 오늘 나의 미식 여정을 책임져 줄 곳이다.
식당 앞에 다다르니, 넓찍한 주차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갓길에도 차들이 임시로 주차되어 있는 걸 보니, 이곳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야외 테이블은 운치를 더하고, 싱그러운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는 첫인상부터 호감을 준다. 나무 테이블과 의자는 편안함을 더하고,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벽에 걸린 메뉴판을 살펴보니, 어죽을 비롯해 능이버섯 어죽, 도리뱅뱅이, 민물새우튀김, 수제 돈까스 등 다양한 메뉴가 눈에 띈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까스 메뉴가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잠시 고민 끝에, 나는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어죽과 도리뱅뱅이를 주문했다. 잠시 후, 테이블 위로 정갈하게 차려진 밑반찬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치, 깍두기, 샐러드 등 소박하지만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맛깔스러운 반찬들이다. 특히 김치는 어죽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죽이 등장했다. 묵직한 냄비에 담겨 보글보글 끓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뽀얀 국물 위로 듬뿍 올려진 채소들은 신선함을 더하고, 코를 찌르는 향긋한 냄새는 식욕을 자극한다. 스테인리스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어죽은 넉넉한 인심을 보여주듯 푸짐한 양을 자랑한다.
국자로 어죽을 휘저으니, 쫄깃한 면발과 함께 잘게 부서진 생선 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국물 한 숟갈을 떠서 맛보니, 깊고 진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여러 가지 생선을 오랜 시간 끓여 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은, 마치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끓인 보약과도 같았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매콤함은 입맛을 돋우고, 어죽 특유의 깊은 풍미는 잊고 지냈던 미각을 깨우는 듯했다.

함께 제공된 노란 밥을 국물에 말아 먹으니, 또 다른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밥알 하나하나에 어죽의 깊은 맛이 스며들어, 씹을수록 고소함이 더해진다. 면을 건져 먹고, 밥을 말아 먹으니, 배가 불러오는 줄도 모른 채 계속해서 숟가락을 움직이게 된다.
어느 정도 어죽을 즐긴 후, 이번에는 도리뱅뱅이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둥근 철판 위에 뱅글뱅글 돌려 담긴 도리뱅뱅이는, 그 화려한 비주얼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한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멸치 위로 듬뿍 올려진 채소들은 신선함을 더하고, 매콤 달콤한 양념 냄새는 코를 자극한다.
젓가락으로 도리뱅뱅이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니,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멸치 특유의 짭짤함과 양념의 매콤 달콤함이 어우러져, 멈출 수 없는 맛을 선사한다. 특히 도리뱅뱅이 위에 올려진 깻잎은 향긋함을 더하고, 느끼함까지 잡아준다.

도리뱅뱅이를 맛보는 순간, 시원한 막걸리가 간절해졌다. 메뉴판을 살펴보니, 인삼 막걸리가 눈에 띈다. 망설임 없이 인삼 막걸리를 주문했다. 뽀얀 막걸리 잔에 따르니, 은은한 인삼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막걸리 한 모금을 들이키니, 톡 쏘는 청량감과 함께 인삼의 은은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도리뱅뱅이와 막걸리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어느덧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섰다. 든든하게 채워진 배만큼이나 마음도 풍족해진 기분이다. 잊고 지냈던 어죽의 참맛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옛기왓집 어죽’. 깔끔한 분위기, 친절한 서비스,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맛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상당산성을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몇몇 방문객들의 후기처럼, 반찬의 종류가 조금 더 다양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그리고 2천 원에 판매하는 아메리카노는 다소 맹물 맛이 난다는 평이 있으니, 커피는 다른 곳에서 즐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한, 도리뱅뱅이의 가격이 멸치의 크기에 비해 다소 비싸다는 의견도 있으니,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이러한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옛기왓집 어죽’은 분명 청주를 대표하는 맛집임에 틀림없다. 어죽을 좋아한다면, 혹은 새로운 맛에 도전해 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방문해 보길 바란다. 분명 잊지 못할 미식 경험을 선사해 줄 것이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다음번 방문을 기약했다. 그때는 능이버섯 어죽과 민물새우튀김에도 도전해 봐야겠다. ‘옛기왓집 어죽’에서의 맛있는 기억을 되새기며,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