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고향 옥천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그곳, 뭉근한 그리움이 피어오르는 곳이다. 옥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70년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구읍할매묵집.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드나들던 그 묵집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에는 ’50년 전통의 손맛’이라는 문구가 정겹게 다가왔다. 실제로는 70년이 넘은 노포인데, 겸손함마저 느껴진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정겹게 느껴졌다. 테이블은 거의 만석이었고,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좌식 테이블만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현대식 테이블도 놓여 있었다. 약간의 현대적인 변화와 세월의 흔적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메뉴판은 간결했다. 도토리묵(냉, 온), 도토리골패묵, 도토리전, 막걸리. 겨울에는 메밀묵도 판매하는 듯했다. 나는 시원한 도토리묵 냉묵밥과 도토리전을 주문했다.

주문을 하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한쪽 벽면에는 ‘먹거리 X파일 착한식당’ 인증패가 눈에 띄었다. 1946년부터 3대째 이어져 오는 맛집이라는 설명도 적혀 있었다. 주인 할머니께서 젊은 시절, 뒷산에서 도토리와 상수리열매를 주워 묵을 쑤어 팔기 시작한 것이 이 묵집의 시작이라고 한다. 앙금을 수없이 치대고 가라앉혀 떫은맛을 제거하고, 가마솥에 끓여 묵을 만드는 정성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국내산 도토리와 상수리열매만을 고집한다는 점도 믿음직스러웠다.
잠시 후, 주문한 도토리묵밥과 도토리전이 나왔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도토리묵밥 위에는 김가루, 참깨, 잘 익은 배추김치가 소담하게 올려져 있었다. 붉은빛 동치미와 깻잎절임, 고추지가 기본 반찬으로 함께 나왔다. 묵밥 국물부터 한 모금 맛보았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맑은 육수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더해져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은은하게 퍼지는 멸치 향이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멸치 육수 맛을 떠올리게 했다.

도토리묵은 젓가락으로 휘저으니 툭툭 끊어지는 것이, 시판 묵과는 확연히 달랐다. 묵 특유의 쌉쌀한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부드럽고 담백했다. 김치와 김가루, 참깨와 함께 묵을 한 입 가득 넣어 먹으니, 입안 가득 고소함과 시원함이 퍼져 나갔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묵 맛과 거의 흡사했다.
함께 나온 동치미는 시원하고 깔끔했다. 많이 달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새콤한 맛이 묵밥과 잘 어울렸다. 아삭아삭 씹히는 무의 식감도 좋았다. 깻잎절임은 짭짤하면서도 향긋한 깻잎 향이 입맛을 돋우었다. 풋고추를 삭혀 만든 고추지는 매콤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묵밥의 심심함을 잡아주었다.
도토리전은 큼지막한 크기를 자랑했다. 얇게 부쳐진 전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했다. 깻잎이 들어가 향긋한 향이 느껴졌다. 젓가락으로 찢어 간장 양념에 찍어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특히, 간장에 절인 깻잎에 싸서 먹으니, 향긋함이 배가 되어 더욱 맛있었다.

묵밥을 먹다가, 문득 어머님이 생각났다.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은 평소에 도토리묵을 즐겨 드셨다. 특히, 여름이면 시원한 묵사발을 자주 해주셨는데, 그 맛이 구읍할매묵집 묵밥과 너무나 흡사했다. 뭉클한 감정이 밀려왔다. 묵밥을 먹는 내내, 어머님과의 추억이 떠올라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면서도 슬펐다.
혼자서 묵밥 한 그릇과 도토리전을 깨끗하게 비웠다. 슴슴한 맛이지만, 먹을수록 깊은 맛이 느껴졌다.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내 입맛에는 딱 맞았다. 진짜 건강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여사장님께서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물으셨다. “네,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묵 맛이랑 똑같아요.”라고 대답하니, 여사장님께서 환하게 웃으셨다. 계산대 옆에는 도토리 영양 찹쌀떡도 판매하고 있었다. 사위가 개발했다는 찹쌀떡은 후식으로 좋을 것 같아 하나 구입했다.

가게를 나서기 전, 화장실에 들렀는데, 솔직히 조금 실망스러웠다. 오래된 노포라 그런지,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았다. 낡은 시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청결에는 조금 더 신경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구읍할매묵집은 옥천읍 문정리에 위치해 있다. 정지용 시인 생가에서 실개천 하나만 건너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옥천은 시인 정지용과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식사를 마치고 정지용 생가를 방문하여 시인의 흔적을 따라 걷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구읍할매묵집은 내게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어린 시절 추억과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공간이다. 화려하고 세련된 맛은 아니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맛은 잊고 지냈던 고향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다. 옥천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들러 추억의 맛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찹쌀떡을 꺼내 먹었다. 쫄깃한 떡 안에 견과류가 듬뿍 들어 있어 고소하고 맛있었다. 구읍할매묵집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마음까지 따뜻하게 채워주는 경험이었다.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방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