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찾았던 시골 장터의 추어탕집. 뭉근하게 끓여낸 진한 국물에 밥 한 그릇 뚝딱 말아 먹고 나면 온몸에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던 그 시절의 기억. 도시 생활에 찌들어 그 맛을 잊고 지냈는데, 문득 그 푸근한 맛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인천 어디쯤에 그 향수를 달래줄 만한 곳이 없을까. 스마트폰을 켜고 꼼꼼하게 검색을 시작했다. 레이더망에 포착된 곳은 학익동의 한 추어탕집. ‘진짜 옛날 방식 그대로’라는 어느 방문객의 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 오늘 저녁은 여기다.
퇴근 후 곧장 차를 몰아 학익동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좁은 골목길 안쪽에 자리 잡은 식당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과 소박한 외관에서부터 ‘맛집’의 기운이 느껴졌다. 주차장이 없는 건 조금 아쉬웠지만, 주변 골목에 요령껏 주차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턱을 넘으니, 정겨운 분위기의 홀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추어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마치 고향집에 온 듯 편안했다. 왁자지껄한 소리, 숟가락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 그리고 은은하게 풍겨오는 구수한 추어탕 냄새가 어우러져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혼자 온 손님은 바쁜 시간에는 잘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살짝 걱정했지만, 다행히 자리가 있어 바로 앉을 수 있었다.
메뉴판을 보니 추어탕과 강황돌솥밥이 대표 메뉴인 듯했다. 강황돌솥밥을 주문하면 추어탕이 함께 나온다기에, 망설임 없이 강황돌솥밥을 주문했다. 잠시 후, 정갈하게 차려진 한 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강황돌솥밥과 추어탕을 중심으로, 어리굴젓, 콩나물 무침, 깍두기 등 다채로운 밑반찬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어리굴젓. 젓갈의 깊은 풍미가 추어탕과 어우러져 어떤 맛을 낼지 기대감을 높였다. 튀김도 맛보기로 조금 나오는데, 노릇노릇한 색감이 입맛을 돋우었다.
돌솥밥은 15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밑반찬을 하나씩 맛보았다. 콩나물은 아삭하고 간은 적절했다. 깍두기는 시원하고, 특히 어리굴젓은 짭짤하면서도 감칠맛이 풍부했다. 메인 메뉴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드디어 기다리던 강황돌솥밥이 나왔다. 뚜껑을 여니, 강황 특유의 은은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밥알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검은콩이 콕콕 박혀 있어 먹음직스러웠다. 서둘러 밥을 그릇에 퍼 담고, 돌솥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만들었다.

먼저 강황돌솥밥을 한 입 맛보았다. 밥알은 찰기가 넘쳤고, 강황의 향긋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콩의 고소함까지 더해져, 밥만 먹어도 정말 맛있었다.
다음으로 추어탕을 맛볼 차례. 뚝배기 안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추어탕은, 보기만 해도 속이 풀리는 듯했다.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니, 진하고 구수한 맛이 온몸을 감쌌다.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 넣어 걸쭉하면서도 부드러운 국물은, 깊은 풍미를 자랑했다.
옛날 방식 그대로 끓여냈다는 후기처럼, 미꾸라지 뼈가 살짝 씹히는 느낌이 오히려 정통 추어탕의 매력을 더했다. 인위적인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깊은 맛이었다. 우거지는 얼마나 부드러운지,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렸다.

본격적으로 추어탕을 즐기기 위해, 테이블에 놓인 들깨가루와 부추, 다진 마늘을 듬뿍 넣었다. 얼큰한 맛을 좋아하는 나는 청양고추도 넉넉히 넣었다. 숟가락으로 잘 저어준 후, 밥을 말아 한 입 크게 떠먹으니,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었다.
진한 추어탕 국물이 밥알에 스며들어 촉촉하게 적셔주고, 들깨가루의 고소함과 부추의 향긋함, 마늘의 알싸함, 청양고추의 매콤함이 한데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어리굴젓을 얹어 먹으니, 짭짤하면서도 녹진한 맛이 추어탕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미꾸라지 튀김도 빼놓을 수 없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튀김은,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튀김옷이 두껍지 않아 미꾸라지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튀김을 추어탕 국물에 살짝 찍어 먹으니, 느끼함은 사라지고 고소함은 배가 되었다.

정신없이 추어탕과 돌솥밥, 튀김을 번갈아 가며 먹다 보니, 어느새 뚝배기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누룽지로 입가심을 하니, 속이 한결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하는데, 여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셨다. 부족한 반찬은 없는지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모습에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사장님의 따뜻한 인사를 뒤로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배는 든든했고, 마음은 따뜻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추어탕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더욱 특별했던 저녁 식사였다.
비록 화려한 인테리어나 세련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제대로 된 추어탕을 맛볼 수 있는 곳. 학익동에서 숨은 맛집을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꼭 예약하고 와야겠다. 혼자 오는 손님은 바쁜 시간에는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학익동의 풍경은 왠지 모르게 정겹게 느껴졌다. 오늘 맛본 추어탕의 따뜻함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인천에서 맛보는 추억의 맛, 학익동 추어탕집에서 잊지 못할 한 끼 식사를 경험해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