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가득 채운 장독대를 바라보곤 했다. 그 안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말로 다 할 수 없는 갖가지 발효 음식들이 숙성되고 있었지. 그 손맛이 그리워질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용인에 자리한, 소박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보리밥집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건강한 밥상이 그리워, 익숙한 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주말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역시나 주차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행히 주차를 도와주시는 분의 능숙한 안내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주차할 수 있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은 마치 고향집에 온 듯한 푸근함을 안겨준다. 건물 앞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는데, 테이블 사이 간격이 넓어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 아마도 정겨운 인테리어와 구수한 음식 냄새 덕분일 것이다. 홀 한켠에는 신발장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정수기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직원분께서 빠르게 기본 상차림을 준비해주셨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볼에 담긴 보리밥과 쌀밥, 그리고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듯한 갖가지 나물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콩나물, 무생채, 열무김치, 톳나물 등 다채로운 색감의 나물들은 하나하나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테이블마다 놓인 큼지막한 들기름 병이었다. 고소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게, 넉넉한 인심마저 느껴졌다. 뜨끈한 숭늉과 뻥튀기가 준비되어 있는 것도 좋았다. 숭늉 한 모금으로 속을 따뜻하게 데우고, 뻥튀기를 하나씩 집어 먹으며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청국장이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쿰쿰한 냄새는 거의 없고, 부드러운 콩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깊고 구수한 맛이었다. 청국장 특유의 향 때문에 꺼리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비빔밥을 만들어볼 차례. 스테인리스 볼에 보리밥과 쌀밥을 취향껏 담고, 갖가지 나물들을 듬뿍 올렸다. 고추장과 참기름, 그리고 들기름까지 아낌없이 넣고 쓱쓱 비비니, 먹음직스러운 비빔밥이 완성됐다.
한 입 크게 맛보니, 입안 가득 퍼지는 나물 향이 정말 향긋했다. 톡톡 터지는 보리밥의 식감과 부드러운 나물, 그리고 고소한 기름의 조화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간이 세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나물만 먹으면 조금 허전할 것 같아, 제육볶음도 추가로 주문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제육볶음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불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게, 젓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맛이었다.

흰 쌀밥 위에 제육볶음을 올려 먹으니, 매콤달콤한 양념과 부드러운 돼지고기의 조화가 입 안에서 황홀하게 펼쳐졌다. 제육볶음은 쌈으로 먹어도 맛있었다. 상추에 밥과 제육볶음, 그리고 쌈장을 올려 크게 한 입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맛이었다.
고소한 고등어구이도 빼놓을 수 없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짭짤한 간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직원분께서 뼈를 발라주셔서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밥과 반찬은 얼마든지 리필이 가능하니까! 푸짐한 인심 덕분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따뜻한 누룽지가 나왔다. 구수한 누룽지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무리까지 완벽한 식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식으로 준비된 강냉이를 한 웅큼 집어 들고,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식당 입구에는 작은 화분들이 놓여 있었는데, 알록달록한 꽃들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식당 곳곳에서 느껴지는 정성이, 이곳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이곳의 메뉴는 단촐하다. 보리밥 정식은 9천 원, 제육볶음과 고등어구이는 각각 1만 원이다. 나물만으로 구성된 정식이 다소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푸짐한 양과 신선한 재료를 생각하면 결코 아깝지 않은 가격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예전에 비해 나물 종류가 줄었다는 점, 그리고 누룽지가 예전처럼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또한, 외국인 직원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도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이곳은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이곳은 건강한 밥상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특히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간이 세지 않고, 소화도 잘 되는 건강한 음식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꼭 고등어구이를 추가해서 먹어봐야겠다.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
용인에서 맛보는 푸근한 고향의 맛.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