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낡은 나무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밥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마당 한켠 장독대에서는 익어가는 김치 냄새가 풍겨 나오고, 툇마루에 앉아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해주시던 따뜻한 밥 한 끼는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귀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최근, 문득 그 시절 할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질 때 즈음, 마치 운명처럼 한 식당을 발견했다. 남천동 골목길에 자리 잡은 “남천정원식당”. 낡은 간판에서 풍겨져 나오는 세월의 흔적은 마치 오래된 할머니 댁을 연상케 했다.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는 묘하게 어색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느꼈던 푸근함이 나를 감쌌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 안은 한산했다. 테이블 몇 개가 놓인 아담한 공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벽에는 빛바랜 메뉴판이 걸려 있었는데, 뼈해장국, 소고기 뭇국 등 정겨운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뼈해장국을 주문했다. 메뉴판 옆에는 영업시간 안내가 붙어있는데,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라고 적혀 있었다. 늦은 저녁에는 맛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지만, 왠지 모르게 아침 일찍 방문해서 든든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주문 후, 테이블 위에는 뼈해장국과 함께 비빔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양푼과 갖가지 채소가 담긴 그릇들이 놓였다. 열무김치, 무생채, 계란 등 푸짐한 비빔밥 재료들을 보니 마치 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테이블 한켠에는 직접 짠 듯한 참기름과 고추장이 놓여 있었다. 뚜껑을 열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잠시 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뼈해장국이 나왔다. 뚝배기가 아닌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온 모습은 흔히 보던 뼈해장국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 안에는 푸짐한 돼지 뼈와 우거지, 그리고 붉은 양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뽀얀 국물 위에는 송송 썰린 파와 다진 마늘이 듬뿍 올려져 있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는 순간, 진하고 깊은 맛이 온몸을 감쌌다. 돼지 뼈를 오랜 시간 푹 끓여낸 듯, 국물은 깊고 풍부한 맛을 자랑했다. 인위적인 조미료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집에서 정성껏 끓인 해장국처럼 담백하고 깔끔했다. 마치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바로 그 맛이었다.
뼈에 붙은 살코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젓가락만 대도 쉽게 발라졌다. 살코기를 국물에 적셔 먹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했다. 뼈해장국에는 흔히 시래기가 들어가는데, 이곳은 시래기 대신 우거지가 들어가 있어 독특했다. 우거지는 부드럽고 고소했으며, 뼈해장국의 깊은 맛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뼈해장국을 어느 정도 먹고 난 후, 양푼에 밥과 함께 각종 채소, 고추장을 넣고 참기름을 살짝 뿌려 비빔밥을 만들었다. 젓가락으로 쓱쓱 비벼 한 입 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었다. 뼈해장국 국물과 함께 먹으니 그 맛이 더욱 환상적이었다.

혼자서 뼈해장국 한 그릇과 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배가 불렀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자, 주인 할머니께서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주셨다. 마치 오랜만에 할머니 댁에 방문한 손주를 반겨주시는 듯했다.
남천정원식당은 단순히 뼈해장국을 파는 식당이 아닌,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느꼈던 따뜻한 정과 푸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인위적이지 않은 뼈해장국의 깊은 맛과 푸짐한 비빔밥, 그리고 친절한 주인 할머니의 미소는 지친 일상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부산 남천동 맛집 남천정원식당. 뼈해장국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한 추억과 정을 느끼고 싶다면, 꼭 한번 방문해 보길 바란다. 분명 잊지 못할 지역명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