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울적할 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차에 몸을 싣고 무작정 괴산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깊은 산 속에 들어와 있었다. 도로 옆 계곡을 따라 늘어선 식당들 사이로, 유독 눈길을 끄는 한 곳이 있었다. 얼음골 식당. 왠지 모르게 끌리는 이름에 이끌려 차를 멈췄다.
식당 앞에는 울창한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깊게 숨을 들이쉬니 쌉싸름한 풀 내음과 촉촉한 흙 내음이 코 끝을 간지럽혔다. 도시에서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정겹고 푸근한 분위기가 나를 맞이했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살펴보니, 닭백숙과 오리백숙이 주 메뉴였다. 고민 끝에 몸보신에 좋을 것 같은 한방 오리백숙을 주문했다. 가격은 6만원. 둘이 먹기에는 조금 많은 양이지만, 남으면 포장해가면 되니까. 주문을 마치고 나니, 따뜻한 물수건과 함께 밑반찬들이 하나 둘 테이블 위를 채우기 시작했다.
반찬은 하나하나 정갈하고 깔끔했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백김치는 시원하고 아삭했고, 갓 담근 듯한 붉은 김치는 보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추 장아찌는 짭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슴슴하게 무쳐낸 나물은 향긋한 풀 내음이 살아있었고, 젓갈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깍두기는 톡 쏘는 시원함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큼지막하게 썰어낸 풋고추를 양념에 버무린 반찬이었다. 매콤하면서도 아삭한 식감이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밑반찬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정성에 감탄하며, 메인 메뉴인 오리백숙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져갔다.

잠시 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방 오리백숙이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뚝배기 안에는 뽀얀 국물에 잠긴 오리 한 마리가 통째로 담겨 있었다. 팽이버섯, 부추, 대파 등 갖가지 채소들이 푸짐하게 올려져 있었고, 은은한 한방 향이 코 끝을 자극했다. 5만 5천원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국물을 한 입 떠먹어보니, 깊고 진한 맛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각종 한약재와 채소에서 우러나온 듯한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오리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은은한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져나갔다. 푹 삶아진 오리 살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젓가락만 대도 살이 쉽게 발라졌다.

잘 익은 오리 다리 하나를 뜯어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니,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듯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환상적이었다. 깻잎 장아찌에 싸서 먹으니, 짭짤한 깻잎 향과 고소한 오리 고기가 어우러져 더욱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백숙을 어느 정도 먹고 나니, 찹쌀누룽지죽이 나왔다. 푹 고아진 찹쌀과 누룽지가 섞여 뽀얀 빛깔을 뽐내는 죽은, 보기만 해도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죽을 한 입 맛보니, 은은한 단맛과 함께 구수한 누룽지 향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갔다.

오리백숙의 깊은 맛이 그대로 녹아든 죽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요리였다. 뜨끈한 죽을 후루룩 들이키니, 온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깍두기를 올려 먹으니, 아삭한 식감과 함께 매콤한 맛이 더해져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정말이지, 마지막 한 숟갈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주인 아주머니께서 직접 담근 사과즙을 내어주셨다. 얼음골에서 수확한 사과로 만들었다는 사과즙은,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후식까지 완벽하게 챙겨주시는 따뜻한 인심에 감동했다. 식당 옆에는 작은 커피숍도 운영하고 있어서,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나는 사과즙으로 충분했기에, 커피숍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얼음골 식당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닌, 정겹고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한 미소와 푸짐한 인심 덕분에, 마치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괴산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다. 특히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몸보신 시켜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식당을 나서며, 울창한 숲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답답했던 마음은 어느새 평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괴산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잊지 못할 하루였다. 얼음골 식당은, 내 마음 속에 숨겨둔 나만의 괴산 맛집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돌아오는 길, 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아 맛있는 오리백숙을 즐겨야겠다고 다짐했다. 괴산 얼음골 식당. 그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몸과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따뜻한 위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