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저녁,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던 날이었다. 꿈속에서 숯불 위에서 지글거리는 꼼장어의 향긋한 연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눈을 뜨니 꼼장어 생각에 도저히 다른 음식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 오늘 저녁은 꼼장어다. 서울에서 곰장어를 전문으로 하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기에, 벼르던 차에 여의도로 향했다.
진주상가, 그 이름만으로도 10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맛집들의 향연이 느껴지는 곳. 그 좁다란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꼼장어집의 간판이 젖은 공기 속에서 유독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파란색과 흰색으로 쓰인 “민물장어 꼼장어” 네 글자가 어찌나 반갑던지.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이미 몇몇 테이블에서는 숯불 위에서 꼼장어가 익어가는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손님들의 웃음소리와 꼼장어 굽는 냄새가 뒤섞여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냈다. 비 오는 날, 뜨끈한 숯불 앞에서 꼼장어를 즐기는 낭만 때문일까. 자리에 앉자마자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고민 끝에 둘 다 맛보기로 했다. 곰장어의 신선함이 남다르다는 이야기에 잔뜩 기대감이 부풀었다.
밑반찬이 먼저 나왔다. 깻잎 장아찌, 쌈 채소, 그리고 꼼장어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는 생강채까지. 특히 잘 익은 묵은지는 꼼장어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숨은 공신이었다. 숯불이 들어오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꼼장어가 등장했다.

소금구이 꼼장어는 뽀얀 속살을 드러낸 채, 숯불 위에서 서서히 익어갔다. 껍질이 노릇노릇해지고, 특유의 기름이 숯불에 떨어지면서 ‘치익’ 소리를 냈다. 그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참을 수 없어 젓가락을 들었다. 갓 구워진 꼼장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니,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신선한 꼼장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은은한 단맛은 덤이었다. 양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재료 자체가 훌륭했다.

이번에는 양념구이다. 빨간 양념을 입은 꼼장어는 숯불 위에서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매콤한 향이 침샘을 자극했고, 젓가락질은 더욱 빨라졌다. 양념이 꼼장어에 제대로 스며들어, 입안에서 매콤달콤한 맛이 폭발했다. 깻잎 장아찌에 싸 먹으니, 향긋한 깻잎 향과 매콤한 양념의 조화가 완벽했다.

꼼장어를 어느 정도 먹어갈 때쯤, 쭈꾸미볶음과 해물라면을 추가했다. 꼼장어만큼이나 쭈꾸미 역시 신선함이 느껴졌다. 탱글탱글한 식감과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젓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해물라면은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각종 해산물이 아낌없이 들어가, 국물 맛이 깊고 풍부했다. 꼼장어와 쭈꾸미볶음으로 살짝 느끼해진 입안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주는 역할을 했다.

어느덧 테이블 위에는 소주병과 맥주병이 쌓여갔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분위기 덕분에 술이 술술 들어갔다. 옆 테이블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들 꼼장어 맛에 감탄하며, 다음 방문을 기약하는 모습이었다.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정감 있는 서비스였다. 능숙한 솜씨로 꼼장어를 구워주는 이모님 덕분에, 더욱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꼼장어 굽기의 달인, 이모님의 손길이 닿으니 꼼장어는 더욱 맛깔스럽게 익어갔다. 다만,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는 서비스가 다소 느려질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친절한 미소와 맛있는 음식은, 기다림의 시간을 충분히 보상해줬다.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섰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은 따뜻했다. 맛있는 꼼장어와 정겨운 분위기 덕분에, 잊지 못할 저녁 식사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격이 다소 비싼 편이라는 점은 아쉬웠지만, 맛과 신선함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진주상가의 숨은 보석 같은 이곳,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생각날 것 같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꼼장어의 여운을 곱씹었다. 진정한 맛집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추억과 감성을 함께 선물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의도에서 만난 꼼장어집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최고의 맛집이었다. 다음번 비 오는 날에도, 나는 어김없이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