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시대, 굳이 멀리 일본까지 가지 않아도, 마치 그곳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자친구와의 기념일을 맞아, 특별한 점심을 선물하고 싶었던 나는, 그녀에게 “일본 여행은 못 가도, 여기는 진짜 일본 그 자체야!”라고 자신 있게 말하며 율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은은한 나무 향과 따뜻한 조명이, 마치 내가 알던 어느 일본의 작은 식당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매장 안은 생각보다 넓고,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특히,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여수의 푸른 바다는, 눈으로 먼저 맛보는 훌륭한 요리였다.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율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다양한 덮밥 메뉴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의 선택은 언제나 ‘규동’이었다. 율의 규동은, 내가 일본에 가고 싶을 때마다 찾던 그 맛, 완벽한 일본 그 자체였으니까.
여자친구는 메뉴 고르는데 한참을 망설였다.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은 그녀를 위해, 나는 율의 메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오픈 초기와는 다르게, 메뉴가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니, 사장님께서 꾸준히 노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그녀는 나가사키 짬뽕을 골랐다.
잠시 후, 우리가 주문한 규동과 나가사키 짬뽕이 나왔다. 규동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우삼겹이 밥 위에 소복하게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신선한 쪽파가 흩뿌려져 있었다. 나가사키 짬뽕은 커다란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 나왔는데, 홍합, 새우, 오징어 등 다양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 있었다.

젓가락으로 규동을 살짝 들어올려 한 입 맛보았다. 부드러운 우삼겹의 풍미와 달콤 짭짤한 소스가 어우러져 입안 가득 행복이 퍼지는 맛이었다. 밥알 한 톨 한 톨에도 소스가 잘 배어 있어, 숟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여자친구도 나가사키 짬뽕 국물을 한 입 맛보더니, “진짜 맛있다!”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곧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나가사키 짬뽕이 너무 매웠던 것이다. 쉴 새 없이 기침을 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짬뽕 안에는 엄청난 양의 고추가 들어 있었다. 여자친구는 고추를 건져내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후라이팬 코팅이 벗겨져 검은색 건더기들이 꽤 많이 나왔다.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물을 건네주고, 규동을 조금 덜어주었다. 다행히 그녀는 규동을 먹으면서 매운맛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싸늘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 여행 안 가도 되지?”라는 나의 재치 있는 말에, 그 날 데이트는 망쳐버렸다.
솔직히, 나도 나가사키 짬뽕 국물을 살짝 맛보았는데, 정말 맵긴 매웠다. 마치 한국에서 혐한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율의 다른 메뉴들은 정말 훌륭하지만, 나가사키 짬뽕은 조금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주방의 위생 상태도 조금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율의 가장 큰 장점은 사장님의 친절한 서비스 마인드다. 배달 어플로 처음 알게 되어 매장에서 회식까지 진행해 봤을 정도로, 나는 율을 자주 애용하고 있다. 사장님은 항상 밝은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음식에 대한 설명도 꼼꼼하게 해 주신다.

결국, 우리는 씁쓸한 마음으로 율을 나섰다. 여자친구는 다음 주에 다시 오자고 했지만,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율은 분명 맛있는 덮밥을 파는 곳이지만, 모든 메뉴가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율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정리해 보았다. 규동은 여전히 훌륭했고, 사장님의 서비스는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나가사키 짬뽕은 실망스러웠고, 주방의 위생 상태는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다음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다른 덮밥 메뉴에 도전해 봐야겠다. 율의 다른 메뉴들은 분명 우리를 만족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율이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하여, 여수를 대표하는 덮밥 맛집으로 자리매김하길 응원한다.
비록 완벽한 기념일은 아니었지만, 율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주에 여자친구와 다시 율에 방문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이 든다. 그 때는 꼭, 맛있는 덮밥을 먹고 행복한 데이트를 즐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