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김밥이 먹고 싶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원래는 다른 김밥집을 가려고 했지만, 문을 열지 않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곳이 바로 방배동의 해남원조김밥. 방배동 3대 김밥이라는 이야기에 호기심이 일었던 터였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옛스러운 간판의 모습도 한몫했다.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은 내가 좋아하는 돈카츠 가게인 ‘시올돈’ 바로 근처였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미소가 지어졌다. 가게 앞에는 배달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고, 낡은 건물 외관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는 배달 박스가 쌓여 있었고, 간판에는 ‘김밥’이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띄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생각했던 것보다 소박한 모습이었다. 세련된 느낌은 아니었지만, 정겨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김밥을 말고 계시는 여사장님께 메뉴에 대해 여쭤보니, 친절하게 답변해주셨다. 얼큰이김밥은 아쉽게도 재료 수급 문제로 주문이 불가하다고 했다. 햄맛살김밥에는 마요네즈가 들어가지 않고, 참치김밥에만 마요네즈가 들어간다는 정보도 얻었다. 결국 유부김밥 2줄, 참치김밥 2줄, 그리고 꼬마김밥 1줄을 주문했다. 꼬마김밥은 어린아이들을 위한 메뉴라고 하셨지만,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주문이 밀려 잠시 기다리는 동안, 가게 내부를 둘러봤다. 한쪽 벽면에는 메뉴 사진과 함께 가격이 적혀 있었다. 유부김밥이 4,000원, 참치김밥이 5,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픈된 공간에서 김밥을 만드는 모습은 위생적으로 보였다. 김밥 재료들이 스테인리스 통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직원분들은 위생 장갑을 착용하고 계셨다.

드디어 김밥이 나왔다. 갓 만들어진 유부김밥과, 뒷쪽에서 만들어진 참치김밥, 꼬마김밥을 받아 들고 가게를 나섰다. 검은 비닐봉투에 젓가락과 함께 담아가는 방식이 정겹게 느껴졌다. 계산은 카드 리더기를 이용해 직접 해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밥 포장을 풀었다. 은박지에 싸여 있는 김밥의 모습이 어릴 적 소풍 가던 날을 떠올리게 했다.

가장 먼저 참치김밥을 맛봤다. 촉촉한 느낌보다는 살짝 뻑뻑한 감이 있었다. 우엉과 유부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졌지만, 요즘 김밥들에 비하면 평범한 맛이었다. 밥알은 고슬고슬하게 잘 지어져 있었지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이어서 유부김밥을 맛봤다. 참치김밥과 마찬가지로 은은한 단맛과 신맛이 느껴졌다. 옛날 김밥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내용물이 화려한 요즘 김밥들에 비하면 다소 뒤처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40년 전통의 원조김밥이라고 하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소 김밥을 먹을 때 라면을 즐겨 곁들이는 편이라, 이번에도 라면을 끓여 함께 먹어봤다. 하지만 묘하게 김밥의 맛이 강해서, 라면과의 조화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옥정김밥은 라면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는데, 해남원조김밥은 라면보다는 김밥 자체로 즐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꼬마김밥을 맛봤다. 3-4살 아이들을 위한 메뉴라고 하더니, 역시나 맛이 강하지 않았다. 은은한 단맛과 신맛이 느껴지는 것이, 유부김밥과 비슷한 맛이었다. 어린 조카는 꼬마김밥을 조금 먹다가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아마도 비슷한 맛에 질린 듯했다. 내 입맛에도 썩 맛있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해남원조김밥은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흔한 타입의 김밥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잠원동 상아김밥이나 남대문 통통김밥처럼 특별한 개성이 느껴지는 김밥은 아니었다. 샐러드 김밥처럼 볼륨감 있는 메뉴를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다소 아쉬웠다.

메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김밥 가격을 500원씩 인상할 예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가격도 나쁘지 않지만, 가격이 인상되면 경쟁력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해남원조김밥은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매력이 부족한 곳이었다. 옛날 김밥을 좋아하거나, 추억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겠지만, 요즘 트렌드에 맞는 김밥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다. 굳이 재방문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 가격이라면 괜찮다고 할 수 있지만, 가격 인상 후에는 글쎄…

그래도 방배동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김밥 맛집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너무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런 소박한 김밥으로 입 안을 정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어릴 적 엄마가 싸주시던 김밥이 떠올랐다. 화려한 재료는 없었지만, 따뜻한 밥과 정성으로 가득했던 그 김밥. 해남원조김밥은 어쩌면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맛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