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며칠 전부터 벼르던 강릉 여행, 비 때문에 망설였지만 왠지 모르게 뜨끈한 국물이 당기는 날이었다. 묵호항 근처에 칼국수, 그것도 장칼국수로 유명한 곳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곧장 차에 몸을 실었다. 촉촉하게 젖은 도로를 따라 달리니 어느새 묵호항 특유의 바다 내음이 코를 간지럽혔다.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에 도착하니, 파란색 건물에 큼지막하게 “오뚜기 칼국수”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이미 가게 앞에는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 강릉 사람들은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을 위해 기꺼이 기다림을 감수하는 듯 했다.

기다리는 동안 가게를 슬쩍 살펴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벽에는 메뉴판이 붙어 있었는데, 장칼국수, 흰칼국수, 칼만둣국 등 다양한 메뉴가 눈에 띄었다. 특히 가격이 저렴해서 놀라웠다. 요즘 같은 시대에 7~8천 원으로 칼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메뉴판 옆에는 “주문 후 자리 옮기시면 안됩니다”라는 손글씨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마도 많은 손님들 때문에 혼선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사장님의 센스인 듯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따뜻한 온기와 함께 칼국수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테이블은 몇 개 없었지만, 좁은 공간 안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사장님은 능숙한 솜씨로 웨이팅 손님들의 주문을 미리 받아 테이블 회전율을 높이고 있었다. 빈 자리에 앉자마자, 미리 주문했던 장칼국수가 금세 나왔다.

장칼국수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붉은 빛깔의 국물 위에는 김 가루와 깨가 듬뿍 뿌려져 있었고, 애호박, 감자, 계란 등 다양한 재료들이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다. 겉보기에는 엄청 매울 것 같았지만, 막상 국물을 한 입 맛보니 맵기보다는 깊고 진한 맛이 느껴졌다. 고추장 베이스의 국물은 적당히 칼칼하면서도, 텁텁하지 않고 깔끔했다.
면은 얇고 부드러웠다. 쫄깃한 식감은 덜했지만, 국물과 잘 어우러져 후루룩 넘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면발 사이사이로 국물이 스며들어, 면만 먹어도 충분히 맛있었다. 특히 비 오는 날씨에 뜨끈한 국물과 부드러운 면발의 조화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테이블 한쪽에는 김치와 단무지가 놓여 있었다. 먹을 만큼 덜어 먹는 시스템이었는데, 김치가 정말 맛있었다. 적당히 익은 김치는 아삭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장칼국수와 김치의 조합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찰떡궁합이었다. 칼국수를 먹다가 살짝 느끼해질 때쯤 김치를 한 입 먹으면, 입안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신기하게도 다른 테이블에서는 다들 찬밥을 시켜서 국에 말아 먹고 있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도 찬밥을 하나 주문했다. 밥알이 살짝 퍼져서 나왔지만, 뜨거운 국물에 말아 먹으니 색다른 맛이었다. 특히 김치를 얹어 먹으니, 꿀맛이었다. 왜 다들 찬밥을 시켜 먹는지 알 것 같았다.

옆 테이블에서 칼만둣국을 시킨 것을 보니, 큼지막한 만두가 넉넉하게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다음에는 칼만둣국도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남자 사장님은 안 계시고 홀 아주머니께서 계산을 하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카드 계산을 할 줄 모르시는지, 남자 사장님을 찾으셨다. 잠시 후 남자 사장님이 나오셔서 능숙하게 계산을 해주셨다.
가게는 다소 허름했지만, 정겨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사장님을 비롯한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손님 한 분 한 분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온 듯한 푸근함이 느껴졌다.
오뚜기칼국수의 장칼국수는, 다른 지역에서는 맛보기 힘든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흔히 장칼국수는 된장 베이스와 고추장 베이스로 나뉘는데, 오뚜기칼국수는 고추장 베이스에 좀 더 가까운 맛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히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마치 떡볶이 국물에 칼국수 면을 넣어 먹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장칼국수집들은 대체로 간이 센 편인데, 오뚜기칼국수는 간이 세지 않으면서도 밸런스가 잘 잡혀 있었다. 짜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비결이 궁금했다.
오뚜기칼국수는 아침 7시에 오픈한다. 이른 시간부터 문을 여는 덕분에, 아침 식사를 하러 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방문했을 때도, 아침 식사를 하러 온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든든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싶다면, 오뚜기칼국수를 방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넓은 주차장도 완비되어 있어, 주차 걱정 없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뱃속은 따뜻한 칼국수로 든든하게 채워져 있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묵호항 지역 바닷가를 잠시 거닐었다. 촉촉하게 젖은 거리를 걸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었다.

오뚜기칼국수는 화려하거나 세련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칼국수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비 오는 날, 뜨끈한 국물과 함께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하고 싶다면, 오뚜기칼국수를 강력 추천한다. 다음 강릉에 방문했을 때, 나는 꼭 다시 이곳을 찾아 이 맛집 의 칼만둣국을 맛보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