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찌뿌둥하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장대비에 온몸이 축 처지는 기분. 이럴 땐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로 속을 확 풀어줘야 한다. 문득 지인이 강력 추천했던 부산 감전동의 육일원조명태탕이 떠올랐다. 평소 생선찌개를 즐겨 먹는 편은 아니지만, 유독 그곳 명태탕은 잊을 수 없다는 지인의 극찬에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빗줄기를 뚫고 찾아간 육일원조명태탕. 도착하니 역시나, 좁은 골목길까지 길게 늘어선 대기 줄이 나를 반겼다. 10분에서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에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마음은 명태탕에 굳게 사로잡힌 후였다. 기다리는 동안 가게 주변을 둘러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과 외관에서 숨겨진 맛집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빨간색으로 크게 쓰여진 “육일원조명태탕” 간판은 한눈에 들어왔고, 그 아래 ‘명태탕의 진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가게 앞에는 이미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손님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이 눈에 띄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코를 찌르는 매콤한 향이 확 풍겨왔다. 테이블은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두고 자리에 앉으니, 따뜻한 물수건과 함께 메뉴판이 놓였다. 메뉴는 단 하나, 명태탕! 고민할 필요 없이 명태탕을 주문했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밑반찬과 함께 명태탕이 커다란 쟁반에 담겨 나왔다. 뽀얀 국물 위로 듬뿍 올려진 파와 고추가 식욕을 자극했다. 쟁반 위에는 김치, 나물, 오징어젓갈, 튀김 등 정갈하게 담긴 밑반찬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 특히 오징어젓갈은 젓갈 특유의 짭짤함과 꼬들꼬들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드디어 명태탕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맛을 보았다. 와!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국물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매운맛이 강렬했지만, 과하게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하게 매운맛이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서도 멈출 수 없는 중독적인 맛이었다. 마치 전날 과음으로 지친 속을 달래주는 듯한 시원함이었다. 왜 이곳을 해장 맛집이라고 부르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명태 살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렸다. 신선한 명태를 사용해서인지, 살에서 비린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국물과 함께 떠먹으니 그 맛이 배가 되었다. 특히 겨울 무가 들어가 국물의 시원함을 더했다.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는 달큰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내어, 명태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밥 한 공기를 뚝딱 말아 명태 살과 함께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얼큰한 국물이 밥알에 스며들어, 씹을수록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밑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오징어젓갈을 곁들여 먹으니, 쉴 새 없이 숟가락을 움직이게 됐다. 특히 갓 지은 듯 윤기가 흐르는 밥은 명태탕의 맛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 회전율이 빠른 편이었지만,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게 안은 손님들의 이야기 소리와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 찼다.
정신없이 명태탕을 먹다 보니,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뜨거운 국물과 매운맛에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불쾌함보다는 오히려 개운함이 느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숟가락을 놓을 수 없는, 마성의 명태탕이었다.

육일원조명태탕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을 넘어,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따뜻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친절한 서비스는 아니었지만, 넉넉한 인심과 푸짐한 양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가게를 나서는 순간까지, 입안에는 얼큰한 명태탕의 여운이 감돌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차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주변 갓길이나 이마트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맛이라면, 주차의 불편함쯤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육일원조명태탕은 짧은 영업시간으로도 유명하다. 하루에 3시간 30분밖에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잘 맞춰서 방문해야 한다. 특히 주말에는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으니, 오픈 시간에 맞춰 가는 것을 추천한다. 가게 문에는 ‘재료가 소진될 때까지’라고 적혀있어, 늦게 가면 헛걸음할 수도 있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는 길, 밖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명태탕을 맛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고, 기대 이상의 맛에 감동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든든했다. 얼큰하고 시원한 명태탕 한 그릇 덕분에, 꿉꿉한 날씨도 잊은 채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육일원조명태탕은 부산에서 맛본 최고의 명태탕이었다. 신선한 재료와 깊은 국물 맛, 그리고 푸짐한 인심까지 더해져,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비 오는 날,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이 생각난다면, 주저 없이 육일원조명태탕을 추천한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단, 대기 시간과 짧은 영업시간을 고려해서 방문하는 것을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