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로 향하는 길, 창밖 풍경은 잿빛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곧 마주할 따뜻한 공간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다. 목적지는 수북로, 그곳에 자리 잡은 특별한 카페, ‘수북로1945’였다. 좁다란 골목길을 조심스레 빠져나오자, 마치 숨겨진 보석처럼 아늑한 공간이 눈 앞에 펼쳐졌다.
카페에 들어서자,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래된 민가를 개조했다는 이야기가 무색하지 않게,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소품들이 놓여 있었다. 낡은 미싱, 빛바랜 흑백 사진, 앤티크 가구들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촌스러움이 아닌, 따스하고 정겨운 감성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할머니 집에 놀러 온 듯 편안한 느낌이랄까.

카페는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아늑한 다락방이 있는 곳이었고, 다른 한쪽은 햇살이 잘 드는 창가 자리가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다락방으로 향했다. 어릴 적 꿈꾸던 아지트 같은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낮은 천장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을 수 있는 좌식 테이블과, 은은한 조명이 아늑함을 더했다. 마치 비밀스러운 공간에 숨어든 듯한 기분이었다.
메뉴판을 펼쳐 들자, 다양한 음료와 디저트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밤을 이용한 음료들이 시그니처 메뉴인 듯했다. 밤라떼, 밤 아인슈페너 등 흔히 볼 수 없는 메뉴들에 호기심이 생겼다. 잠시 고민하다가, 이곳에 왔으니 꼭 맛봐야 한다는 밤라떼를 주문했다. 달콤한 밤의 풍미가 가득 느껴지는 라떼라니,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주문한 밤라떼가 나오기 전,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었다. 벽에는 빨강머리 앤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카페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마치 동화 속 세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한쪽 벽면에는 LP판들이 가득 꽂혀 있었고, 앤티크한 재봉틀과 찻잔 세트가 놓여 있었다. 주인장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밤라떼가 나왔다. 뽀얀 우유 거품 위에 밤 크림이 듬뿍 올려져 있었고, 그 위에 밤 조각이 살포시 뿌려져 있었다. 달콤한 밤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셔보니, 입 안 가득 퍼지는 부드러운 밤의 풍미가 황홀하게 느껴졌다. 과하지 않은 은은한 단맛이 정말 좋았다. 라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따뜻한 카페 안에서 바라보는 차가운 겨울 풍경은 묘한 대비를 이루며 더욱 운치 있게 느껴졌다.
밤라떼와 함께 초코 아몬드 쿠키도 주문했는데, 이것 또한 훌륭한 선택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쿠키는 고소한 아몬드와 달콤한 초콜릿의 조화가 일품이었다. 밤라떼와 함께 먹으니, 달콤함이 배가 되는 듯했다. 쿠키를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카페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와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특히 ‘까까’라는 이름의 고양이는 붙임성이 좋아서, 손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나도 까까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잠시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듯했다.

카페 밖에는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었는데, 토끼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1,000원을 내면 토끼에게 당근을 줄 수 있는 체험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아 보였다. 정원 한쪽에는 불멍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따뜻한 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수북로1945는 음료와 디저트뿐만 아니라, 식사 메뉴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특히 페스츄리 도우로 만든 피자가 인기 메뉴라고 했다. 제철 과일 샐러드 피자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내가 방문했을 때는 품절이었다. 대신 고르곤졸라 피자를 주문했는데,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정말 좋았다. 도우가 페스츄리라서 더욱 바삭하고 맛있었다. 샐러드 피자를 먹지 못한 아쉬움은 고르곤졸라 피자로 충분히 달랠 수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친절하고 따뜻했다.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세심하게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음료를 가져다주시면서, 밤라떼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으셨다. 부여에서 생산되는 밤을 사용하여 직접 만든다고 하셨다. 정성이 가득 담긴 음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페에는 나처럼 혼자 온 손님들도 많았지만, 연인, 가족 단위 손님들도 많이 보였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카페를 즐기고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북로1945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 카페를 나설 시간이 되었다. 따뜻한 밤라떼와 맛있는 피자, 그리고 아늑한 분위기 덕분에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겨울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내 마음은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수북로1945는 단순한 카페 그 이상이었다. 그곳은 추억과 감성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고, 따뜻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바쁜 일상에 지쳐 잠시 쉼표가 필요할 때, 수북로1945를 방문하여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분명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부여 여행 중 만난 이 특별한 맛집 카페는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자리 잡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부여의 밤 풍경은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롯데리조트부여의 화려한 조명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고, 고즈넉한 한옥 건물들이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여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롭게 시간을 내어 부여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수북로1945에 들러 따뜻한 밤라떼를 마시며,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