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간을 내어 옥천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단 하나, 1946년부터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는 구읍할매묵집.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입맛을 잠시 쉬게 해주고,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소박하지만 정겨운 맛을 느끼고 싶었다. 대전에서 출발해 굽이굽이 국도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낡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50년 전통의 손맛’이라는 문구가 정겹다. 건물 맞은편에는 다행히 작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편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함께 은은한 묵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벽 한쪽에는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 착한 식당으로 선정되었다는 인증 액자가 걸려 있었다. 믿음직스러운 느낌에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졌다. 메뉴는 단출했다. 도토리묵(냉, 온), 도토리 골패묵, 도토리전, 그리고 겨울철에만 맛볼 수 있다는 메밀묵. 나는 따뜻한 도토리묵밥과 도토리전을 주문했다. 가격은 각각 7,000원, 6,000원.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비싼 편은 아니었다. ,
주문을 마치자, 곧바로 밑반찬이 차려졌다. 붉은빛이 감도는 동치미, 간장에 절인 깻잎, 그리고 고추장아찌.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가 인상적인 동치미였다. 여사장님은 매년 풋고추를 10가마 정도 구입해서 직접 장아찌를 담그고, 동치미 역시 태백무라는 특별한 품종으로 11월에 담근다고 했다.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도토리묵밥이 나왔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려낸 맑은 육수에 푸짐하게 담긴 도토리묵, 그 위로 김 가루와 참깨, 김치가 넉넉하게 뿌려져 있었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온 묵밥은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 입 맛보니,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묵 특유의 쌉쌀한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함께 나온 동치미는 시원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톡 쏘는 듯한 청량감은 묵밥의 슴슴함을 완벽하게 보완해 주었다. 특히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무는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고추장아찌는 매콤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묵밥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삭힌 고추 특유의 깊은 풍미가 입맛을 돋우었다.
잠시 후, 도토리전이 나왔다. 큼지막한 크기의 도토리전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했다. 향긋한 깻잎과 김치가 듬뿍 들어가 있어 풍성한 맛을 자랑했다. 여사장님은 간장에 절인 깻잎에 싸서 먹으면 더욱 맛있다고 알려주셨다. 시키는 대로 깻잎에 싸서 먹으니, 짭짤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도토리전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묵밥을 먹는 동안,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해주셨던 도토리묵 맛이 떠올랐다. 어릴 적 어머니는 뒷산에서 직접 도토리를 주워 묵을 쑤어주시곤 했다.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도토리묵은 언제나 따뜻하고 정겨운 맛이었다. 구읍할매묵집의 묵밥은 마치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재현한 듯했다. 묵을 쑤는 과정에서 앙금을 수없이 치대고 가라앉혀 떫은맛을 제거한다는 설명처럼, 정성 가득한 맛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식당 안을 둘러보니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가족 단위 손님들은 물론, 연인, 친구끼리 온 손님들도 있었다. 뽀빠이 이상용 님도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이곳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맛집이었다. 식당 한켠에서는 할머니가 직접 묵을 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가마솥에서 끓이는 도토리묵은 둥근 솥바닥 전체에 열을 가하기 때문에 맛이 더욱 좋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자, 여사장님은 푸근한 미소로 “맛있게 드셨냐”고 물어보셨다. 넉넉한 인심과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곳은 3대째 이어져 오는 곳이며, 주인 할머니께서 젊은 나이에 먹고살기 위해 뒷산에서 도토리와 상수리열매를 주워다가 묵을 쑤어 팔기 시작하면서 이 음식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사장님은 질 좋은 조선간장을 만들기 위해 직접 콩 농사도 짓고, 5,000평 부지에 농약을 쓰지 않고 각종 농작물을 재배한다고 했다. 직접 확인하지 않는 재료는 절대로 쓰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신조 때문이라고. 옥천맛집 구읍할매묵집의 도토리와 상수리열매는 국내산만 사용한다고 한다.
구읍할매묵집의 삼형제 중 큰형 인종 씨는 경기 포천시에서, 둘째형 의호 씨는 대구에서 각각 ‘옥천구읍할매묵집’과 ‘시골묵집’을 운영하며 서로 국산 물량을 주고받으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손님이 많은 토요일에는 대덕연구단지에서 영양사로 일하는 큰딸 지혜 씨와 제과제빵사인 둘째딸 지현 씨도 와서 돕는다고 하니, 진정한 가족의 힘으로 이어져 오는 식당인 셈이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식당 문을 나섰다.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옥천의 정겨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구읍할매묵집은 단순한 식당이 아닌, 3대째 이어져 오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육영수 여사 생가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잠시 들렀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옥천은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구읍할매묵집에서 사 온 도토리묵을 꺼내 다시 한번 맛보았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은 여전했다. 묵을 먹는 동안, 옥천에서의 따뜻했던 추억들이 떠올랐다. 다음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 방문해서, 이 맛있는 묵밥을 함께 나누고 싶다.
구읍할매묵집은 자극적인 맛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건강한 맛을 선사하는 곳이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맛을 지켜온 장인 정신과, 푸근한 인심은 이곳을 단순한 식당이 아닌,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옥천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한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물론, 모든 사람의 입맛에 완벽하게 맞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슴슴한 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구읍할매묵집의 진정한 매력은 자극적인 맛이 아닌, 소박함과 정겨움에 있다. 어쩌면, 이곳은 맛뿐만 아니라, 추억과 향수를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여사장님의 쎄한 말투가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후기도 있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친절하고 넉넉한 인심에 감동받았다. 아마도, 그날따라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막걸리 한 잔과 함께 묵을 즐겨봐야겠다. 직접 양조장에서 받아오신다는 막걸리는 어떤 맛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리고, 겨울에는 메밀묵도 꼭 맛봐야겠다.
옥천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구읍할매묵집에서 느꼈던 따뜻함과 정겨움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옥천을 방문해서, 그 맛있는 묵밥을 맛볼 것을 다짐한다. 옥천 구읍의 맛집, 할매묵집은 내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 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