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 뜨끈한 국물이 간절해졌다. 문득, 잊고 지냈던 청량리 경동시장 인근의 혜성칼국수가 떠올랐다. 주말 점심시간, 역시나 좁은 골목길 입구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간판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 옆으로 ‘ since 1983 ‘이라는 문구가 이 집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듯했다.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드디어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지만, 테이블 간 간격은 좁은 편이었다. 낡은 TV에서는 트로트 채널이 흘러나오고, 연세 지긋하신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정겨운 분위기가 묘하게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메뉴는 단 두 가지, 닭칼국수와 멸치칼국수. 나는 닭칼국수를, 함께 간 친구는 멸치칼국수를 주문했다.
주문을 마치자마자 김치와 다진 마늘 양념이 담긴 종지가 테이블에 놓였다.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김치는 큼지막하게 썰려 있었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젓가락으로 김치 한 조각을 집어 맛을 보니, 매콤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겉절이 스타일의 김치는 칼국수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할 것 같았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닭칼국수가 나왔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 칼국수는 푸짐한 양을 자랑했다. 면 위에는 닭고기 고명이 듬뿍 올려져 있었고, 파와 김가루가 살짝 뿌려져 있었다. 국물은 뽀얀 빛깔을 띠고 있었고, 은은한 닭 육수 향이 코를 자극했다. 면발은 일반적인 칼국수 면과는 조금 달랐다. 얇고 넓적한 면발은 수타면처럼 불규칙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먼저 국물부터 한 모금 맛보았다. 진하고 깊은 닭 육수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닭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깔끔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좋았다. 면발은 쫄깃함보다는 부드러운 식감에 가까웠다. 후루룩 넘어가는 면발은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았다. 닭고기는 퍽퍽하지 않고 야들야들했다. 면과 함께 닭고기를 먹으니, 든든함이 느껴졌다.

함께 나온 다진 마늘 양념을 조금 넣어 맛을 보았다. 마늘의 알싸한 향이 더해지니, 칼국수의 맛이 한층 더 깊어졌다. 매콤하면서도 감칠맛 도는 양념은 닭칼국수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쉴 새 없이 면을 흡입하고 국물을 들이켰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친구의 멸치칼국수도 맛보았다. 닭칼국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멸치 육수는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멸치 특유의 비린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뒷맛이 좋았다. 멸치칼국수 역시 다진 마늘 양념과 잘 어울렸다. 취향에 따라 닭칼국수와 멸치칼국수를 선택하면 될 것 같았다.

칼국수를 먹는 중간중간 김치를 곁들이니, 질릴 틈이 없었다. 아삭아삭한 김치의 식감과 매콤한 맛은 칼국수의 풍미를 더욱 끌어올려 주었다. 김치가 맛있어서 몇 번이나 리필을 부탁드렸는데, 친절하게 가져다주셨다. 넉넉한 인심 또한 혜성칼국수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어느새 칼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배가 불렀지만,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진한 국물 맛이 자꾸만 입안에 맴돌았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는데, 연세 지긋하신 사장님께서 ” 맛있게 드셨어요? 다음에 또 오세요! “라며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셨다. 정겨운 인사에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혜성칼국수는 화려하거나 세련된 맛은 아니었다. 하지만 푸근하고 정겨운 분위기와 진심이 담긴 맛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마치 할머니가 끓여주신 듯한, 따뜻한 칼국수 한 그릇은 추운 겨울날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청량리나 경동시장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혜성칼국수에 들러 칼국수 한 그릇 맛보기를 추천한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혜성칼국수는 단순히 칼국수를 파는 식당이 아닌, 오랜 세월 동안 청량리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온 추억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변치 않는 맛과 따뜻한 정으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칼국수 맛집으로 남아주길 바란다. 다음에는 멸치칼국수를 먹으러 다시 방문해야겠다.
총평
* 맛: 닭 육수의 깊고 진한 맛이 일품. 멸치칼국수도 깔끔하고 시원하다. 김치와 다진 마늘 양념과의 조화가 훌륭하다.
* 양: 푸짐한 양으로,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면 추가도 무료로 가능하다.
* 가격: 칼국수 한 그릇에 만 원.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맛과 양을 고려하면 가성비가 괜찮다.
* 분위기: 오래된 노포의 정겨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서비스: 사장님과 직원분들 모두 친절하다.
팁
* 주말 점심시간에는 웨이팅이 길 수 있으니, 시간을 피해서 방문하는 것이 좋다.
* 다진 마늘 양념을 조금씩 넣어가며 맛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 김치가 맛있으니, 칼국수와 함께 곁들여 먹는 것을 추천한다.
* 양이 부족하면 면 추가를 요청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