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서 마포구에 숨겨진 평양냉면 맛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슴슴한 매력에 빠져 평양냉면을 찾아다닌 지 어언 10년, 새로운 지역의 강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망설일 틈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상호는 ‘온랭’, 따뜻함과 차가움을 모두 담았다는 이름에서부터 묘한 기대감이 샘솟았다.
망원역에서 내려 좁은 골목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었을까. 멀리서도 눈에 띄는 세련된 간판이 나를 맞이했다. 낡은 건물 외벽에 묵직한 폰트로 새겨진 ‘溫 냉’ 두 글자는, 묘하게 대비되면서도 조화로운 인상을 풍겼다. 마치 오랜 전통과 새로운 감각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게 앞은 웨이팅 손님들로 북적였다. 요즘 핫플레이스답게 캐치테이블 예약은 필수인 듯했다. 다행히 미리 예약을 해둔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내부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테이블은 모두 다찌 형태로 되어 있었고, 12명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앉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벽면에는 메뉴판이 심플하게 걸려 있었는데, 평양냉면 외에도 곰탕, 스지곰탕, 만두국 등 다양한 메뉴가 눈에 띄었다. 따뜻한 메뉴와 차가운 메뉴를 모두 갖춘 점이 ‘온랭’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평양냉면을 주문했다. 잠시 후, 놋그릇에 담긴 냉면이 눈 앞에 놓였다. 뽀얀 육수 위에 메밀면이 소담하게 담겨 있고, 그 위에는 두툼한 고기 고명과 삶은 계란이 얹어져 있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비주얼에 절로 침이 꼴깍 넘어갔다.
가장 먼저 육수부터 맛봤다. 첫 맛은 슴슴하면서도 은은한 육향이 느껴졌다. 여느 평양냉면 전문점처럼 쨍한 육향이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은은하게 퍼지는 육향이 더욱 깊고 섬세한 맛을 선사했다. 다만, 끝 맛에서 살짝 강한 염도가 느껴지는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이 짠맛이 오히려 평양냉면 입문자들에게는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면은 주문 즉시 기계로 뽑아낸다고 한다. 실제로 면을 뽑는 기계가 주방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갓 뽑아낸 면이라 그런지, 면발이 탱글탱글하고 쫄깃했다. 메밀 함량이 높은 듯, 면에서 은은한 메밀 향이 느껴지는 점도 좋았다. 젓가락으로 면을 휘휘 저어 육수와 함께 맛보니, 입 안 가득 퍼지는 시원함과 쫄깃한 식감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고명으로 올라간 돼지고기 수육은 큼지막하게 썰어져 나왔다. 퍽퍽하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이 좋았고, 은은한 육향이 냉면의 풍미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특히, 소금에 절인 오이가 들어가 있어 시원함과 개운함을 더해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평양냉면과 함께 만두도 주문했다. 이곳 만두는 특이하게 1알씩 판매하고 있었다. 혼자 방문한 나에게는 부담 없이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만두피는 얇고 속은 두부와 돼지고기로 꽉 차 있었다. 간이 세지 않고 담백한 맛이 깔끔하게 느껴졌다. 특히, 만두 속 재료들의 조화가 훌륭했는데, 과하지 않은 간이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주었다.

반찬으로는 열무김치와 무 절임이 나왔다. 열무김치는 적당히 익어 시원하고 아삭한 맛이 좋았고, 무 절임은 새콤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특히, 열무김치는 평양냉면과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는데, 슴슴한 냉면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서며, 왜 이곳이 성산동에서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전통적인 평양냉면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젊은 층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육향, 쫄깃한 메밀면, 푸짐한 고기 고명, 그리고 깔끔한 반찬까지, 모든 요소들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테이블 간 간격이 좁고 다찌 형태라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기에는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 혼잡한 시간대에는 웨이팅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을 감안하더라도, ‘온랭’은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다음번에는 스지곰탕과 돼지고기 수육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특히, 날씨가 쌀쌀해지면 뜨끈한 곰탕 국물이 더욱 간절해질 것 같다. 망원동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온랭’에서 평양냉면 한 그릇 맛보며 미식 경험을 즐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서면서, 다음 방문을 기약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좁은 골목길 너머로 마포의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평양냉면의 여운이 어우러져, 묘한 행복감을 선사했다. 이것이 바로 ‘온랭’이 선사하는 특별한 미식 경험이 아닐까.

돌아오는 길, 문득 ‘온랭’이라는 이름에 담긴 깊은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따뜻함과 차가움, 전통과 새로움, 슴슴함과 강렬함. 이 모든 요소들이 ‘온랭’이라는 공간 안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져, 특별한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에는 또 어떤 새로운 맛과 경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