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찾았던 낡은 골목길 어귀의 작은 냉면집. 세월이 흘러 그 맛은 희미해졌지만, 여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 속의 평양냉면 한 그릇. 잊혀지지 않는 그 맛을 찾아 떠나는 미식 여행, 이번에는 6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동두천의 평남면옥으로 향했습니다. 오래된 노포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에서 과연 추억 속의 맛을 찾을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동두천, 굽이굽이 길을 따라 도착한 평남면옥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부터 남달랐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위, 큼지막한 글씨로 쓰인 ‘평남면옥’ 간판은 이곳의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했습니다. 푸른색 LED 조명이 감싸는 출입문에는 ‘냉면전문’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생각보다 아담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테이블 몇 개가 전부인 작은 홀은 점심시간이 되자 금세 손님들로 가득 찼습니다. 벽에는 허영만 선생님의 백반기행 촬영 사진이 걸려 있어 더욱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따뜻한 면수 대신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주전자째 나왔습니다.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니, 새콤하면서도 청량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텁텁했던 입안이 순식간에 개운해지는 기분, 역시 평양냉면 명가의 시작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뉴판을 보니 물냉면, 비빔냉면, 온반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습니다. 평양냉면 전문점답게 냉면이 주력 메뉴인 듯했지만, 온반이라는 독특한 메뉴도 눈에 띄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물냉면과 이곳의 별미라는 돼지고기 편육 반 접시, 그리고 소고기 계자무침 반 접시를 주문했습니다.
주문 후 잠시 기다리니,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평양냉면이 나왔습니다. 스테인리스 냉면기에 담겨 나온 냉면은 겉보기에도 독특했습니다. 뽀얀 국물 위로 툭툭 끊어질 듯한 메밀면이 소담하게 담겨 있었고, 그 위에는 삶은 계란 반쪽과 수육 몇 점, 그리고 양념장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국물부터 맛을 봤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슴슴한 평양냉면과는 달리, 동치미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국물이었습니다. 시큼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입안을 감도는 것이,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담가주시던 동치미 국수를 먹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평양냉면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평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독특한 맛에 끌렸습니다.
면은 100% 메밀면이라고 하는데, 툭툭 끊어지는 식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메밀 특유의 향도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이, 역시 제대로 만든 평양냉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면을 조금 더 음미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순면 메뉴는 따로 없었습니다. 다음 방문에는 미리 순면으로 부탁드려봐야겠습니다.
냉면 위에 올려진 양념장을 살짝 풀어 맛을 보니, 슴슴했던 국물에 감칠맛이 더해졌습니다. 하지만 양념장이 제 입맛에는 조금 강하게 느껴져, 다음에는 양념장을 빼고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냉면을 어느 정도 먹고 있을 때, 돼지고기 편육과 소고기 계자무침이 나왔습니다. 뽀얀 자태를 뽐내는 돼지고기 편육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겨자 소스에 버무려진 소고기 계자무침은 코를 톡 쏘는 겨자 향이 식욕을 자극했습니다.

돼지고기 편육 한 점을 입에 넣으니, 정말 부드러웠습니다.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고, 함께 나온 묵은지와 함께 먹으니 더욱 맛있었습니다. 쫄깃한 수육에 잘 익은 묵은지를 올려 먹으니, 입안에서 환상적인 조화가 펼쳐졌습니다.
소고기 계자무침은 겨자 소스의 톡 쏘는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선한 소고기와 아삭한 채소의 조화도 훌륭했고, 특히 술안주로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를 찌르는 겨자의 알싸함과 부드러운 제육의 조화는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술도둑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다음에는 꼭 소주 한 병 시켜서 함께 즐겨야겠습니다.

평남면옥의 냉면은 면을 주문과 동시에 뽑는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면발이 더욱 쫄깃하고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이곳은 1953년에 개점하여 6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창업주인 김종연 사장님은 평양이 고향이라고 하네요. 현재는 윤 사장님의 아들이 가업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맛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평소 먹던 슴슴한 평양냉면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평남면옥의 냉면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분명 만족할 만한 맛일 겁니다. 저 역시 동치미 국물을 워낙 좋아해서, 평남면옥의 냉면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평남면옥에서는 냉면 외에도 온반이라는 메뉴를 맛볼 수 있습니다. 온반은 평안도식 국밥이라고 하는데, 메밀 전병이 통째로 들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자극적이지 않고 건강한 맛이라고 하니, 다음 방문에는 꼭 한번 먹어봐야겠습니다. 냉면을 싫어하는 분들을 위해 온반을 준비해 놓은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비스가 조금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도 손님이 물을 달라고 하자, 퉁명스럽게 뒤에 컵이 있다고 가리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장님이 바쁘셔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더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평남면옥은 뒤편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차량을 이용해 방문하기에도 편리합니다. 다만 점심시간에는 손님이 몰려 대기가 발생할 수 있으니, 시간을 잘 맞춰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냉면 특성상 회전율이 빨라 오래 기다리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은 다행입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저는 평남면옥이 단순한 맛집을 넘어 동두천의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평남면옥이 동두천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남아주기를 바랍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남면옥에서 맛봤던 평양냉면의 여운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 그리고 부드러운 돼지고기 편육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다음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 방문해서, 이 맛있는 평양냉면을 함께 즐겨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