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서울의 한 골목길 어귀에 섰다. 오래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80년대 영화 세트장 같았다. 이 골목에 정말 맛집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오직 하나, 숨겨진 보석 같은 간장게장 맛집을 찾는 것이었다.
골목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붉은색 게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눈에 띄었다. 드디어 찾았다. 간판 아래에는 “Since 1985″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자리에서 묵묵히 맛을 지켜온 곳이라는 뜻이리라.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듯, 쾌적하고 밝은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는 공간은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벽에는 유명인들의 사인과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이곳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맛집임을 짐작하게 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쳐 보았다. 간장게장 정식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가격은 2만 5천원. 서울 시내의 다른 게장 전문점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간장게장 정식을 주문했다. 잠시 후, 정갈하게 차려진 한 상이 내 앞에 놓였다.

상 위에는 간장게장을 비롯해 된장찌개, 그리고 다양한 밑반찬들이 놓여 있었다. 말린 가지나물, 여름 사과가 올라간 동치미, 아삭한 식감의 호박나물 등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반찬들이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된장찌개였다. 뚝배기에 담겨 보글보글 끓는 모습이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두부와 애호박이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는 구수하고 깊은 맛을 자랑했다.
드디어 간장게장을 맛볼 차례. 게 껍데기 안에는 주황색 알이 가득 차 있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살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젓가락으로 게살을 조심스럽게 발라 밥 위에 얹어 한 입 먹어보니, 입안 가득 퍼지는 감칠맛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짜지 않고 은은하게 달콤한 간장 양념은 게살의 풍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시간의 맛이 녹아 있는 듯한 깊은 풍미였다.

이 집 간장게장의 특별한 점은 바로 간장이었다. 보통 간장게장에는 산분해 간장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곳에서는 메주를 띄워 만든 전통 방식의 간장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간장의 깊은 맛이 남달랐다. 인위적인 단맛이 아닌, 자연스러운 단맛이 게살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톡톡 터지는 알과 부드러운 게살, 그리고 고소한 김가루가 어우러진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게 눈 감추듯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냈다.

식사를 마치니, 따뜻한 누룽지 숭늉이 나왔다. 적당히 눌어붙은 누룽지는 구수한 향을 풍겼다. 뜨끈한 숭늉을 마시니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입안에 남은 게장의 여운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주는 완벽한 선택이었다.

이곳은 게장 맛뿐만 아니라, 친절한 서비스도 인상적이었다. 서빙하시는 분들은 항상 밝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챙겨주셨다. 덕분에 더욱 편안하고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게로 들어서는 골목길이 좁고 주차가 다소 불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 이 정도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80년대 영화 속 풍경 같은 정겨운 골목길을 걷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며, 다시 한 번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붉은색 게 그림이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 나는 서울의 숨겨진 간장게장 맛집을 발견했다. 비록 화려한 인테리어나 넓은 주차장을 갖춘 곳은 아니지만, 30년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맛과 따뜻한 정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었다. 게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