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퇴근길, 매콤한 무언가가 간절하게 떠오르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쭈꾸미 생각에, 양천향교역 근처에 괜찮은 곳이 없을까 스마트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견한 한 줄기 빛, ‘쭈박사’. 간판 사진에서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에 이끌려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부터 눈에 띄는 붉은색 간판이 나를 반겼다. 쭈박사라는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고, 왠지 모르게 맛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보다 넓고 깔끔한 공간이 펼쳐졌다. 테이블 간 간격도 넉넉해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은은한 조명이 테이블 위를 비추고, 곳곳에 놓인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쭈꾸미, 쭈삼, 쭈삼새 등 다양한 조합이 눈에 띄었다. 고민 끝에 쭈삼새 보통맛을 주문했다. 매운 음식을 즐기지만, 너무 자극적인 건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매운맛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설명해주셨다. 쭈꾸미와 삼겹살, 새우의 조합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 위로 밑반찬들이 하나 둘씩 놓이기 시작했다. 콩나물무침, 무쌈, 깻잎 등 쭈꾸미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하는 녀석들이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건 철판 콘치즈였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따뜻할 때 먹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매운 쭈꾸미와 함께 먹으면 매운맛을 중화시켜줄 것 같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쭈삼새가 등장했다. 붉은 양념에 버무려진 쭈꾸미, 삼겹살, 새우가 뜨거운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신선한 재료들 덕분인지, 쭈꾸미는 탱글탱글했고 삼겹살은 윤기가 흘렀다. 새우 역시 큼지막하고 신선해 보였다. 직원분께서 능숙한 솜씨로 쭈꾸미를 볶아주셨다. 매콤한 향이 코를 간지럽혔다.
“이제 드셔도 됩니다.”
직원분의 말과 동시에 젓가락을 들었다. 가장 먼저 쭈꾸미를 집어 맛봤다. 쫄깃쫄깃한 식감과 함께 매콤한 양념이 입안 가득 퍼졌다. 보통맛으로 주문했는데, 신라면 정도의 맵기였다.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삼겹살은 쭈꾸미의 매콤함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새우 역시 톡톡 터지는 식감이 일품이었다.
깻잎에 쭈꾸미, 삼겹살, 콩나물무침을 함께 싸서 먹으니, 맛이 더욱 풍성해졌다. 깻잎의 향긋함과 콩나물무침의 아삭함이 매콤한 쭈꾸미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무쌈에 싸서 먹으니, 매운맛이 중화되면서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매운맛을 달래기 위해 철판 콘치즈를 한 입 먹으니, 입안이 순식간에 평온해졌다.
함께 주문한 주먹밥도 쭈꾸미와 찰떡궁합이었다. 동글동글하게 뭉쳐진 주먹밥은 고소한 참기름 향이 솔솔 풍겼다. 쭈꾸미 양념에 살짝 찍어 먹으니, 꿀맛이었다. 톡톡 터지는 날치알볶음밥 역시 훌륭했다. 김가루와 날치알이 듬뿍 들어간 볶음밥은 짭짤하면서도 고소했다. 쭈꾸미와 함께 먹으니, 든든함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직원분들의 친절한 서비스에 감동했다. 테이블을 수시로 확인하며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봐 주셨고, 빈 반찬은 바로바로 채워주셨다. 덕분에 불편함 없이 식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어느덧 철판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젓가락을 놓을 수 없었다.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먹기로 결정했다. 직원분께 볶음밥 1인분을 주문했다. 김가루, 참기름, 잘게 썰린 김치를 넣고 볶아주셨다. 뜨거운 철판 위에서 볶아지는 볶음밥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비주얼을 자랑했다. 살짝 눌어붙은 밥알은 꼬들꼬들했고, 매콤한 양념이 깊게 배어 있었다.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배가 불렀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만큼 볶음밥이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온몸에 활력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매운 음식을 먹으니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려는데, 직원분께서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주셨다. “다음에 또 오세요!”
기분 좋게 가게 문을 나섰다. 쭈박사에서 맛있는 쭈꾸미를 먹고 나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서울식물원을 한 바퀴 산책하며 소화를 시키기로 했다. 쭈박사는 맛, 서비스, 분위기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양천향교역 근처에서 매콤한 음식이 생각날 때,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쭈박사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다음에는 다른 메뉴도 먹어봐야지. 특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옥수수나 계란찜도 있다고 하니, 가족들과 함께 와도 좋을 것 같다. 오늘 저녁, 쭈박사 덕분에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