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이 문득 그리워지는 날, 강원도 고성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간성읍, 그곳에 20년 넘게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백반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푸른 동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질 때 즈음, 드디어 간성읍에 도착했다.
읍내는 정겹고 소박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오래된 간판들이 시간을 간직한 듯 빛바랜 채 걸려 있었고, 골목마다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풍경이 펼쳐졌다. 목적지인 백반집은 간성 시장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활기 넘치는 시장 분위기를 뒤로하고, 드디어 식당 앞에 섰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백반을 즐기고 있었다. 정겨운 사투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마치 시골집에 온 듯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도 빈자리에 앉아 백반을 주문했다. 백반을 시키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가 맛있다는 이야기에 김치찌개를 골랐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백반 한 상이 차려졌다. 푸짐한 반찬 가짓수에 입이 떡 벌어졌다. 흰 접시에 소담하게 담긴 반찬들은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졌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콩나물무침, 매콤한 오이무침, 짭짤한 깻잎장아찌, 고소한 취나물, 그리고 따끈한 계란 프라이까지. 마치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가장 먼저 김치찌개에 눈길이 갔다. 뻘겋게 잘 익은 김치와 큼지막한 돼지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국물을 한 입 떠먹으니, 칼칼하면서도 깊은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과 김치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밥 위에 김치찌개를 듬뿍 올려 한 입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반찬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가득했다. 콩나물무침은 아삭아삭한 식감이 살아있었고, 오이무침은 매콤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깻잎장아찌는 짭짤하면서도 향긋한 향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특히 계란 프라이는 반숙으로 익혀져 나와, 노른자를 톡 터뜨려 밥에 비벼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김과 햄 부침을 가져다주셨다. 뜻밖의 서비스에 감동했다. 김은 바삭바삭했고, 햄 부침은 짭짤하면서도 고소했다. 밥 위에 김과 햄 부침을 올려 먹으니, 어릴 적 도시락 반찬으로 먹던 추억이 떠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맛있게 드셨어요?”라며 따뜻하게 물어봐 주셨다. “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할머니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에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었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 빛바랜 벽지, 그리고 곳곳에 놓인 오래된 물건들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테이블 위에 놓인 낡은 책이었다. 겉표지가 닳아 해지고, 페이지마다 손때가 묻어 있는 책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온 듯했다. 책을 펼쳐보니, 오래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 식당의 역사와 추억을 담고 있는 듯했다.
식당 한쪽 벽에는 22사단 군인들의 사진과 편지가 가득 붙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식당은 22사단 군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곳이었다. 외박이나 휴가를 나온 군인들이 이곳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고향의 맛을 느끼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20년을 넘게 이 식당을 다녔다는 한 손님은 “고성에서는 이 집 백반을 따라올 곳이 없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든든하게 채워진 배만큼이나 마음도 따뜻해짐을 느꼈다. 간성 백반집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고향의 맛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날, 다시 이곳을 찾아와 푸근한 백반 한 상을 즐겨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푸른 바다와 붉은 노을이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오늘 맛본 백반의 따뜻함과 할머니의 푸근한 미소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간성 지역의 숨겨진 맛집에서 맛본 백반은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 잊고 지냈던 고향의 정과 따뜻한 추억을 되살려주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다음에 또 고성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찾아가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