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숨결이 깃든 영월 장릉 옆, 추억을 맛보는 보리밥 맛집 기행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도착한 강원도 영월. 도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시간이 멈춘 듯한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목적지는 단종의 애사가 서린 장릉이었다. 능을 천천히 거닐며 그의 흔적을 되짚어보았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 했던 단종. 그의 슬픈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장릉을 뒤로하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장릉 바로 옆, 소박한 외관의 ‘장릉보리밥집’이 오늘의 목적지였다. 푯말에는 ‘향토음식’이라는 단어가 정겹게 다가왔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마치 외할머니 댁에 방문한 듯 푸근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오래된 듯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마루와 낡은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꽃무늬 벽지가 붙어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삐걱거리는 마루 소리와 은은하게 풍기는 흙냄새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메뉴판은 나무판에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보리밥, 두부구이, 감자전 등 소박한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메뉴판 옆 창문으로는 노란 튤립 화분이 놓여있고, 앙증맞은 인형 두 개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이었다.

메뉴판
정겨운 분위기의 메뉴판

보리밥을 주문하자, 순식간에 상이 가득 채워졌다. 커다란 대접에 담긴 보리밥 위에는 큼지막한 감자가 얹혀 있었다. 갓 지은 듯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알과 푹 익은 감자의 조화가 보기만 해도 군침을 돌게 했다. 그리고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나물 반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콩나물, 무생채, 취나물, 고사리 등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домашний 스타일의 반찬들이었다.

고추장과 된장, 참기름을 듬뿍 넣고 젓가락으로 살살 비볐다. 톡톡 터지는 보리밥의 식감과 향긋한 나물 향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행복이 퍼져나갔다. 특히 큼지막하게 썰어 넣은 감자가 인상적이었다. 포슬포슬한 감자의 부드러움이 보리밥의 거친 식감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었다. 된장찌개는 짜지 않고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듯, 시판용 된장과는 확연히 다른 깊고 구수한 맛이 느껴졌다.

보리밥 한상 차림
푸짐한 보리밥 한상 차림

반찬 하나하나에도 정성이 느껴졌다. 특히 노각으로 만든 반찬은 아삭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입맛을 돋우었다. 김치는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보리밥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이며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보리밥만으로는 아쉬워 감자 메밀전도 주문했다. 큼지막한 접시에 담겨 나온 감자 메밀전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했다. 감자와 메밀의 은은한 단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짭짤한 양념장에 찍어 먹으니, 그 맛이 더욱 풍성해졌다. 겉바속쫄의 완벽한 조화였다.

감자 메밀전
겉바속쫄 감자 메밀전

옆 테이블에서는 어르신들이 동동주를 기울이고 계셨다. 덩달아 동동주도 한 잔 주문했다.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직접 담근 동동주라고 하니, 그 맛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시원한 동동주를 들이켜니, 더위가 싹 가시는 듯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하자, 주인 할머니께서 푸근한 미소로 맞아주셨다. 마치 고향에 온 듯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할머니께서는 “어디서 왔냐”며 말을 건네셨고, 나는 “서울에서 왔다”고 답했다. 할머니께서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식당을 나서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 아래, 장릉의 고즈넉한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장릉보리밥집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식사를 넘어, 어린 시절의 추억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사람이 몰리는 시간에는 웨이팅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오래된 가옥이라 시설이 다소 노후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은 음식의 맛과 정겨운 분위기로 충분히 상쇄될 만했다.

몇몇 후기에서는 서비스에 대한 불만이 보이기도 했다. 바쁜 시간대에 손님이 몰리면서 음식 나오는 속도가 늦어지거나, 직원들의 응대가 미흡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는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라 그런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친절한 직원들의 응대에 기분 좋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장릉보리밥집은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도 소개된 영월의 숨은 맛집이라고 한다. 또한 장군의 아들 책을 쓰신 홍성유 작가님의 맛집 책에도 소개되어 있다고 한다. 유명 작가들도 인정한 맛집이라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식당 내부는 가정집을 개조한 듯, 방들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복도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어, 마치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영월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 푸르른 산과 맑은 계곡, 그리고 드넓은 들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했다.

영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장릉보리밥집에 꼭 한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음식푸근한 인심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특히 어르신들과 함께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방문하여 옛 추억을 되살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장릉보리밥집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당이 아닌,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영월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느끼고, 맛있는 음식과 정겨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장릉보리밥집 외관
소박한 외관의 장릉보리밥집

총평: 장릉 옆에 위치한 장릉보리밥집은 소박한 분위기 속에서 푸근한 домашний 스타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보리밥에 큼지막하게 들어간 감자가 인상적이며, 다양한 나물 반찬과 깊은 맛의 된장찌개가 훌륭하다. 감자 메밀전과 동동주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다소 엇갈리지만, 음식의 맛과 정겨운 분위기는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영월 여행 중 향토적인 맛집을 찾는다면, 장릉보리밥집을 추천한다.

: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서 방문하는 것이 좋다. 특히 주말 점심시간에는 웨이팅이 길어질 수 있으니, 조금 일찍 혹은 늦게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좌식 테이블밖에 없으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 주차장은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다.

보리밥 비빔밥
갖가지 나물을 넣어 비빈 보리밥 비빔밥
비빔밥 재료
보리밥과 함께 비벼먹는 다양한 나물들
비빔밥 근접샷
클로즈업으로 보는 보리밥 비빔밥
비빔밥
고추장을 넣고 슥슥 비벼 먹는 보리밥
메뉴
벽에 걸린 메뉴판
묵과 동동주
도토리묵과 동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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