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빽빽한 빌딩 숲 사이로 붉은 노을이 스며들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한 곳이 있다.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내고, 동료들과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곳. 바로 충무로의 영덕회식당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칼칼한 무언가가 당겼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얼큰한 생태찌개, 그리고 싱싱한 막회가 번갈아 가며 나를 유혹했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친구에게 “오늘, 영덕회식당?” 짧은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릴 새도 없이 발걸음은 이미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 충무로 골목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저녁 식사를 즐기러 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영덕회식당 앞은 역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 7시가 채 되기도 전인데, 이미 몇몇 테이블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다행히 웨이팅 없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판을 스캔했다. 막회, 물회, 가자미탕, 도루묵찌개… 하나같이 놓치고 싶지 않은 메뉴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처음부터 정해 놓은 메뉴가 있었다. “여기 막회 하나랑 생태찌개 2인분 주세요!” 주문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밑반찬이 테이블 위로 차려졌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밑반찬들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두부, 짭짤한 멸치볶음, 아삭한 김치, 그리고 꼬시래기 무침. 특히 꼬시래기 무침은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면서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막회가 등장했다. 커다란 접시 위에 청어와 가자미가 얇게 썰려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양파, 오이, 배, 쑥갓, 쪽파, 참깨, 다시마, 꼬시래기 등 다채로운 채소들이 함께 곁들여져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막회 위에 특제 비빔장이 듬뿍 뿌려져 있었는데, 그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젓가락으로 막회와 채소를 듬뿍 집어 입안에 넣었다. 뼈째 씹히는 막회의 꼬득꼬득한 식감과 신선한 채소의 아삭함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특제 비빔장은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특히 다시마와 꼬시래기는 막회의 풍미를 한층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막회를 먹는 방법은 다양하다. 김에 싸 먹어도 맛있고, 깻잎에 싸 먹어도 훌륭하다. 하지만 나는 막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그냥 먹는 것을 선호한다. 막회 한 점에 소주 한 잔, 그야말로 최고의 조합이었다.

막회를 몇 점 집어 먹으니, 드디어 생태찌개가 끓기 시작했다. 냄비 안에는 커다란 생태와 큼지막한 두부, 콩나물, 그리고 각종 채소들이 듬뿍 들어 있었다. 뽀얀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국자로 국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캬!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은 속을 확 풀어주는 느낌이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묵은 피로가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잡내 없이 깔끔한 국물 맛은, 역시 영덕회식당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다.

생태 살은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렸다. 콩나물과 함께 먹으니 아삭한 식감까지 더해져 더욱 맛있었다. 국물을 머금은 두부 또한 훌륭했다. 밥 한 공기를 시켜 국물에 말아 먹으니,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
생태찌개에 곁들여 먹으려고 주문한 밥이 살짝 설익은 듯한 느낌이 든 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찌개 자체가 워낙 훌륭했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다음에 방문할 때는 밥 상태를 미리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덕회식당은 전문 주방장 스타일의 화려한 음식을 내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변함없는 맛과 푸짐한 인심으로 손님들의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퇴근 후 동료들과 편안하게 술 한잔 기울이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곳. 그런 정겨운 분위기가 영덕회식당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벽 한쪽에는 <수요미식회>에 출연했던 당시의 사진과 메뉴판이 걸려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사진들을 보면서, 이 곳이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직장인들이 과메기를 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과메기 특유의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모습이 정말 맛있어 보였다. 다음에는 꼭 과메기를 먹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물회를 시켜 먹고 있었다. 큼지막한 그릇에 담긴 물회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였다. 영덕회식당의 물회는 특이하게 육수가 따로 없고, 얼음을 넣어 녹여 먹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물회 양념이 다소 강하다는 평도 있지만, 밥과 함께 비벼 먹으면 꿀맛이라고 하니, 다음에는 물회에도 도전해봐야겠다.
예전에는 이 근처 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저렴하게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물가가 많이 올라 예전만큼 저렴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덕회식당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신선한 해산물과 푸짐한 탕,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일어섰다. 계산대 옆에는 손님들이 남기고 간 명함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고, 또 추억을 만들어 갔다는 증거일 것이다.
계산을 하면서 이모님께 “오늘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모님은 “다음에 또 오세요”라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 따뜻한 미소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졌다.
영덕회식당을 나서면서, 며칠 동안 묵었던 갈증이 해소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큰한 생태찌개와 싱싱한 막회 덕분에 몸과 마음이 모두 힐링된 느낌이었다. 역시 영덕회식당은 나에게 최고의 맛집이다. 충무로에서 저녁 식사를 할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덕회식당에서 먹었던 막회와 생태찌개의 여운이 계속 맴돌았다. 내일도 힘내서 일하고, 또 영덕회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충무로 직장인들의 든든한 안식처, 영덕회식당.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란다.
며칠 후, 친구와 함께 영덕회식당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막회와 함께 문어숙회를 주문했다. 쫄깃쫄깃한 문어숙회는 막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특히 톳과 함께 싸 먹으니 바다 향이 입안 가득 퍼지는 것이 정말 훌륭했다.

친구는 영덕회식당의 회덮밥을 극찬했다. 여러 종류의 회가 듬뿍 들어가 있어 씹는 맛이 좋고, 신선한 채소와 매콤한 양념장의 조화가 훌륭하다고 했다. 다음에는 꼭 회덮밥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저녁에는 회덮밥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친구와 함께 도루묵찌개를 추가로 주문했다. 도루묵찌개는 처음 먹어봤는데, 알이 톡톡 터지는 식감이 정말 재미있었다. 국물 또한 시원하고 칼칼해서 술안주로 제격이었다.

영덕회식당은 저녁 7시가 넘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6시대로 끊어서 방문하는 것이 좋다.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영덕회식당은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활기찬 분위기가 좋았다. 어깨를 부딪히며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테이블들. 그런 정겨운 풍경들이 영덕회식당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최근에는 손님이 줄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내가 방문했을 때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영덕회식당을 찾고 있었다. 변함없는 맛과 푸짐한 인심,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앞으로도 영덕회식당이 오랫동안 충무로를 지키는 맛집으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영덕회식당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밤이 깊어 있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왠지 모르게 따뜻하고 든든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 덕분일 것이다. 앞으로도 영덕회식당은 나에게 힐링 공간이자, 맛있는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는 소중한 장소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