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저녁, 퇴근길 발걸음은 자연스레 종로3가 방향으로 향했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90년대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경양식 돈까스의 아련한 추억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목적지는 바로 ‘장다불’. 밖에서 풍겨오는 세월의 흔적은 마치 오래된 영화 포스터처럼, 나를 과거의 어느 한 장면 속으로 초대하는 듯했다.
장다불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정겨움’이었다. 낡은 호프 간판 아래 빛바랜 메뉴판이 붙어 있었고, 가게로 들어서는 계단에는 ‘장다불’이라는 상호가 반복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자전거 한 대가 입구 옆에 기대어 있는 모습마저 왠지 모르게 푸근하게 느껴졌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보다 훨씬 깔끔하게 정돈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보이는 허름한 모습과는 달리, 내부는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 벽에 걸린 그림까지, 모든 것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올드팝 음악은 향수를 더욱 자극했다.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돈까스, 함박스테이크, 생선까스 등 추억의 경양식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가격도 7~8천원 선으로 부담 없는 수준이었다. 잠시 고민 끝에, 돈까스와 함박스테이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정식’을 주문했다. 가격은 9천원.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식전 수프가 나왔다. 뽀얀 빛깔의 크림 수프는 후추가 살짝 뿌려져 있었다. 한 입 맛보니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어릴 적 엄마가 끓여주던 수프와 비슷한 맛이었다.

수프를 음미하며 잠시 기다리니,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돈까스 정식이 나왔다. 커다란 접시에는 돈까스, 함박스테이크, 양배추 샐러드, 마카로니, 옥수수 콘, 단무지, 밥이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돈까스 소스가 식욕을 자극했다.

가장 먼저 돈까스를 맛보았다. 얇게 펴진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튀겨낸 돈까스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입안에서 바스러지는 빵가루의 식감과 함께, 고소한 돼지고기 육즙이 흘러나왔다. 소스는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느껴졌다. 요즘 흔히 먹는 두툼한 일본식 돈까스와는 다른, 어릴 적 먹던 바로 그 경양식 돈까스 맛이었다.
이어서 함박스테이크를 맛보았다. 동그랗고 납작한 모양의 함박스테이크는, 칼을 대자 부드럽게 잘렸다. 촉촉한 육즙을 머금은 함박스테이크는, 돈까스 소스와 어우러져 더욱 풍성한 맛을 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돈까스와 함박스테이크를 번갈아 가며 맛보는 사이, 어느새 접시는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곁들여 나온 양배추 샐러드와 마카로니, 옥수수 콘도 돈까스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양배추 샐러드에 뿌려진 케첩과 마요네즈 소스는,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일어서니,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이 눈에 들어왔다. 식사류 외에도 다양한 안주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닭모래집 소금구이, 멸태, 마른 오징어 등 맥주와 함께 즐기기 좋은 메뉴들이 많았다. 저녁에는 호프집으로 변신하는 듯했다.


장다불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한 끼 식사를 넘어,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화려하고 세련된 레스토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물론, 이곳의 돈까스가 최고의 맛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7~8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90년대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장다불만의 특별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장다불을 나서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맛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가끔은 이렇게 소박하고 정겨운 맛을 통해, 잊고 지냈던 추억을 되살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음에는 저녁에 방문해서, 맥주 한 잔과 함께 안주 메뉴를 맛봐야겠다. 그 때는 또 어떤 추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종로에서 90년대 감성을 느껴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장다불을 방문해보시길.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