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드나들던 골목 어귀의 작은 냉면집. 세월이 흘러 그 맛은 희미해졌지만, 여름이면 어김없이 시원한 냉면 한 그릇에 대한 갈망이 솟아오르곤 한다. 며칠 전, 문득 냉면이 너무나 간절해져 예전부터 눈여겨 봐왔던 인천의 “옹진냉면”으로 향했다. 24년 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에 왠지 모를 끌림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쌓아온 맛의 내공은 과연 어떨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아담하고 소박했다. 테이블 몇 개가 놓인 작은 공간은 정겹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세련된 인테리어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오랜 시간 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듯한 흔적이 느껴져 더욱 믿음이 갔다. 벽에는 손님들이 남긴 낙서와 메모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는데, 그 속에서 세월의 흔적과 함께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메뉴는 냉면과 함께 감자부침, 수육 등 간단한 식사 메뉴로 구성되어 있었다. 냉면 전문점답게 물냉면과 비빔냉면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옹진냉면은 특히 북한식 냉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묵직하고 구수한 메밀면과 육수, 까나리액젓, 동치미 국물의 조화가 궁금해졌다. 잠시 고민하다 물냉면과 감자부침을 주문했다. 시원한 냉면과 따뜻한 부침개의 조합은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주문을 마치자 따뜻한 면수가 나왔다. 옹기 종기 모여있는 컵들이 정겹다. 은은한 메밀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마시니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곧이어 감자부침이 먼저 나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감자부침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노릇하게 구워진 표면 위로 듬성듬성 썰린 쪽파가 뿌려져 있어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젓가락으로 크게 한 조각 찢어 입에 넣으니, 감자의 고소한 풍미와 쫀득한 식감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니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더해져 더욱 훌륭했다. 겉바속촉의 정석이라고 할까.

감자부침을 몇 점 먹으니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물냉면이 나왔다. 놋그릇에 담겨 나온 냉면은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뽀얀 육수 위로 가느다란 메밀면이 소담하게 담겨 있었고, 그 위에는 오이, 무 절임, 삶은 계란이 고명으로 얹어져 있었다. 육수부터 한 모금 맛보았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평양냉면처럼 아주 밍밍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극적이지도 않은 딱 좋은 정도의 간이었다. 시원하면서도 깔끔한 육수는 더위를 잊게 해주는 듯했다.
메밀면은 겉으로 보기에도 일반적인 냉면 면과는 달랐다. 자세히 보니 면발이 제법 굵고 표면이 거칠었다. 젓가락으로 휘저어 면을 풀어보니, 툭툭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면을 한 입 맛보니, 구수한 메밀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쫄깃한 일반 냉면과는 달리, 거친 듯하면서도 묵직한 식감이 독특했다. 마치 잘 지은 쌀밥처럼,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이 집만의 비법이 담긴 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면과 육수를 번갈아 가며 정신없이 냉면을 먹었다. 면의 묵직함과 육수의 시원함이 어우러져 최고의 맛을 냈다. 슴슴한 듯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육수는 마치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끓인 사골 육수처럼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면을 다 먹고 남은 육수에 밥을 말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냉면을 먹다가 중간중간 감자부침을 곁들이니, 따뜻함과 시원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더욱 만족스러웠다.
냉면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나는 식초를 살짝 넣어 맛을 변화를 줘봤다. 그랬더니 신맛이 더해지면서 잃었던 입맛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톡 쏘는 식초의 향이 슴슴한 냉면 육수와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다. 마지막 남은 면발까지 깨끗하게 해치웠다.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서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옹진냉면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추억과 함께해온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24년이라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맛을 지켜온 장인의 정신과, 소박하지만 정겨운 분위기가 어우러져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했다.
며칠 후, 나는 옹진냉면에서 포장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포장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최근에 포장을 시작했다고 한다. 집에서도 이 맛있는 냉면을 즐길 수 있다니,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당장 옹진냉면에 전화해 냉면을 포장 주문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포장해온 냉면을 꺼내 들었다. 면과 육수, 고명이 각각 따로 포장되어 있어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포장 용기를 열자, 옹진냉면 특유의 구수한 메밀 향이 은은하게 풍겨져 나왔다. 나는 옹진냉면에서 먹었던 것처럼, 면을 육수에 넣고 고명을 올려 냉면을 완성했다. 그리고 감자부침도 함께 곁들여 먹었다. 역시, 옹진냉면은 매장에서 먹는 것도 맛있지만, 집에서 편안하게 즐기는 것도 훌륭했다.
옹진냉면에서 냉면을 먹고 난 후, 나는 며칠 동안 냉면 생각에 잠 못 이루었다. 옹진냉면의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 묵직한 메밀면의 식감,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인천 맛집 투어를 한다면 옹진냉면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방문해야겠다. 옹진냉면은 인천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냉면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