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향수를 담은 전농동 오징어불백, 보성장에서 찾는 맛있는 추억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잊고 지냈던 대학 시절의 낭만이 문득 떠오르는 날이었다. 낡은 흑백 사진처럼 희미해진 그 시절의 기억을 따라, 무작정 청량리역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그 시절, 가성비 넘치는 식사로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전농동의 작은 기사식당, ‘보성장’이었다.

청량리역 3번 출구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었을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성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짙은 갈색 바탕에 큼지막하게 쓰인 ‘보성장’ 세 글자와, 그 아래 작게 적힌 ‘오징어불백 전문’이라는 문구가 어쩐지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은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한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주었다. 가게 앞에 잠시 차를 대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각보다 넓지 않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간 간격은 좁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기사식당 특유의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벽에 걸린 메뉴판에는 오징어불백을 비롯해 삼치구이, 돼지불백 등 다양한 메뉴가 적혀 있었다. 메뉴판 옆에는 원산지 표시가 꼼꼼하게 되어 있었는데, 오징어는 뉴질랜드산을 사용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디지털 시계는 5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성장 외부 전경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보성장의 정겨운 외부 모습

자리에 앉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오징어불백 2인분을 주문했다. 잠시 후, 사장님께서 직접 호일이 깔린 불판을 테이블 위에 올려주셨다. 그리고는 능숙한 솜씨로 오징어불백을 볶아주시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오징어와 양파의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붉은 양념이 서서히 졸아들면서 더욱 먹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드세요~” 사장님의 짧고 굵은 한 마디와 함께 드디어 식사가 시작되었다. 탱글탱글한 오징어의 식감이 입안 가득 느껴졌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오징어는 씹을수록 깊은 풍미를 자아냈다. 양념은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이른바 ‘단짠’의 정석이었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마늘 향이 느끼함은 잡아주고, 풍미를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다.

밑반찬으로는 김치, 콩나물, 어묵볶음 등 소박하지만 정갈한 반찬들이 나왔다. 특히 어묵볶음은 간이 세지 않아, 메인 메뉴인 오징어불백과 함께 먹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슴슴한 맛 덕분에 오징어불백의 강렬한 양념 맛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오징어불백 한상차림
소박하지만 정갈한 밑반찬과 메인 메뉴인 오징어불백

잠시 후, 흑미가 살짝 섞인 돌솥밥이 나왔다. 갓 지은 밥의 윤기가 좌르르 흘렀다. 밥알 한 알 한 알이 살아있는 듯 꼬들꼬들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밥을 그릇에 옮겨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를 만들어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였다.

따끈한 밥 위에 오징어불백을 듬뿍 올려 한 입 가득 넣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매콤달콤한 양념이 밴 오징어와 고슬고슬한 밥의 조화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시던 따뜻한 밥상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오징어불백을 어느 정도 먹고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 먹으니, 또 다른 별미였다. 매콤한 양념이 밥알에 골고루 배어들어, 숟가락을 멈출 수 없는 마성의 맛이었다. 김치 한 조각을 곁들여 먹으니, 느끼함은 싹 가시고 입안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돌솥밥
갓 지은 흑미 돌솥밥의 윤기가 식욕을 자극한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누룽지로 입가심을 했다. 구수한 누룽지를 한 숟가락 떠먹으니, 속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꼬들꼬들한 누룽지를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느껴졌다. 누룽지 위에 김치를 올려 먹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조합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대 옆에는 사탕이 담긴 작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마치 어릴 적 동네 슈퍼에서 보던 정겨운 풍경이었다. 계산을 하는 동안 사장님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왔는데, 여전히 맛있네요.” 나의 칭찬에 사장님은 환한 미소로 화답해주셨다.

메뉴판
다양한 메뉴가 적힌 메뉴판. 오징어불백 외에도 삼치구이, 돼지불백 등이 있다

보성장에서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이 뺨을 간지럽혔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 옛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듯한 포근함이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 문득 보성장에 대한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의 오징어불백 양이 조금 적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또 어떤 사람들은 9,000원이라는 가격이 다소 비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볶음 요리가 알루미늄 호일에 담겨 나오는 점이 아쉽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2인 테이블이 없어 혼밥하기에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별점 1개도 아깝다”며 혹평을 남기기도 한다. 위생 상태가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고, 사장님의 응대가 다소 무뚝뚝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 보성장을 전농동 맛집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것을 넘어, 소중한 추억과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깔끔한 맛은 마치 집밥을 먹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40년 전통의 깊은 맛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내공이 느껴진다.

오징어불백 조리 모습
사장님이 직접 볶아주시는 오징어불백.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식욕을 자극한다

특히 탱글탱글한 식감이 살아있는 오징어는, 저렴한 냉동 오징어와는 차원이 다른 퀄리티를 자랑한다. 양념 또한 자극적이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가끔 밥이 조금 탈 때도 있지만, 사장님께 말씀드리면 친절하게 응대해주신다.

혼자 방문하는 손님들도 많다는 점은, 이곳이 얼마나 편안한 분위기인지 짐작하게 한다. 평일 저녁에는 비교적 한가한 편이라, 혼자 조용히 식사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보성장이 단순한 식당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소중한 공간이자, 따뜻한 밥 한 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정겨운 청량리 맛집이다.

다음에 다시 청량리에 방문할 일이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보성장을 찾을 것이다. 변함없는 맛과 따뜻한 정이 그리워질 때, 언제든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영수증
오징어볶음 2인분 가격은 2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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