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근교, 드넓은 평야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향한 곳은 김제였다. 볼일을 마치고 나니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기. 원래 봐둔 식당이 있었지만, 아뿔싸, 브레이크 타임에 딱 걸려 버렸다. 하는 수 없이 급하게 주변 맛집을 검색하다가 ‘예촌’이라는 국수집을 발견했다. 왠지 모르게 끌리는 이름에 이끌려 핸들을 돌렸다.
가게 앞에 도착하니, 낡은 건물 외벽을 휘감은 담쟁이 덩굴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촌스러울 법도 한데, 묘하게 정겹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듯한 기분이랄까. 노란색 차양이 드리워진 입구는 마치 시간 여행의 입구처럼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상대로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공간이 펼쳐졌다. 한지 벽과 나무 기둥,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천장에는 독특한 모양의 조명들이 달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80년대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드르륵 여닫이 텔레비전 모양이었다. 테이블과 좌석 배치도 널찍해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에 젖어 잠시 넋을 잃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태블릿 메뉴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멸치국수, 비빔국수, 열무국수 등 다양한 국수 메뉴와 함께 수육, 비빔밥, 시래기국 등 식사 메뉴도 눈에 띄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정식’ 메뉴였다. 국수와 함께 수육이 함께 제공된다고 하니, 왠지 이득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멸치국수 정식과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주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정갈하게 담긴 밑반찬들이 먼저 테이블에 놓였다. 김치, 깻잎 장아찌, 열무 장아찌 등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반찬들이었다. 특히 깻잎 장아찌는 짜지 않고 향긋한 깻잎 향이 그대로 살아있어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멸치국수 정식이 나왔다. 멸치국수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푸짐한 양에 깜짝 놀랐다. 뽀얀 국물 위로 김 가루와 송송 썰린 파, 붉은 고춧가루가 흩뿌려져 있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국물부터 한 입 맛보니, 멸치 특유의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멸치 육수가 너무 진하지도, 너무 연하지도 않아 딱 좋았다. 처음에는 약간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테이블에 놓인 양념장을 살짝 넣어주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면은 쫄깃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웠다. 후루룩 면치기를 하니, 멸치 육수가 면에 착 달라붙어 더욱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면과 함께 곁들여 먹는 김치의 아삭한 식감도 일품이었다. 김치는 적당히 익어 새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국수의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정식에 함께 나온 수육은 얇게 썰어져 접시에 가지런히 담겨 나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수육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수육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니, 세상에나, 정말 부드러웠다. 돼지 특유의 잡내는 전혀 나지 않았고, 입안에서 살살 녹는 듯했다.
수육과 함께 나온 깻잎, 열무 장아찌와 함께 먹으니 더욱 환상적인 맛이었다. 특히 깻잎 장아찌는 수육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향긋한 풍미를 더해주어 최고의 조합을 자랑했다. 쌈장 또한 평범하지 않았다. 짭짤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수육의 풍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깻잎 위에 수육, 파, 그리고 식초 간장 베이스의 양배추와 양파를 올리고 마늘, 고추를 더해 한 입 가득 넣으니 입안에서 여러 가지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함께 주문한 비빔국수 또한 훌륭했다. 적당히 쫄깃한 면발에 매콤달콤한 양념장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었다. 너무 맵거나 짜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비빔국수에 들어간 채소들이 신선해서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창가 자리에 앉으면 대기하는 손님들과 눈이 마주치거나 갑자기 창문을 여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다행히 나는 안쪽 자리에 앉아서 그런 불편함은 없었지만, 창가 자리에 앉을 예정이라면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또한, 바쁜 시간에는 직원들이 손님 응대를 바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 점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카운터 옆에 옛날 과자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어릴 적 동네 슈퍼에서 보던 추억의 과자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예촌에서의 식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리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정감 넘치는 분위기, 맛있는 음식, 그리고 친절한 서비스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김제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꼭 다시 방문하고 싶은 김제 국수 맛집이다. 다음에는 수육에 동동주 한 잔 기울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