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완연한 가을, 맑고 높은 하늘 아래 코끝을 간지럽히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문득 텁텁한 도시의 공기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 건강한 밥상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서울 근교의 숨겨진 맛집을 찾아 나서는 나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번에 나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곳은 양천구 신정동에 자리 잡은 “숲속도토리마을”이었다. 이름에서부터 왠지 모를 푸근함과 건강함이 느껴지는 곳. 망설임 없이 차에 몸을 싣고 그곳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조심스럽게 빠져나오니, 거짓말처럼 눈앞에 펼쳐진 것은 울창한 숲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통과한 듯한 기분. 숲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니, 아담한 2층 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바로 “숲속도토리마을”이었다. 가정집을 개조하여 만든 식당이라는 설명처럼, 외관에서부터 편안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다는 이야기에 더욱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주차는 건물 바로 앞 거주자 우선 주차 공간을 이용하면 된다. 주차 공간이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어 편안하게 주차할 수 있었다. 식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이름처럼 정말 숲 속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맑은 공기와 함께 들려오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었다. 계단을 오르다 뜻밖의 손님과 마주치기도 했다. 바로 사마귀였다.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곤충을 보니 정말 자연 속에 들어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식당 내부는 생각보다 아담했지만, 깔끔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테이블 간 간격이 조금 좁은 듯했지만, 오히려 북적거리는 분위기 덕분에 활기가 넘쳤다. 창밖으로는 푸르른 숲이 한눈에 들어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듯했다. 특히 창가 자리는 인기가 많아 서둘러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혼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직원분께 감사했다.
메뉴판을 펼쳐 들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단연 ‘도토리 정식’이다. 숲속도토리정식은 2인 이상 주문 가능하며, 훈제오리 또는 왕갈비 중에서 메인 요리를 선택할 수 있다. 정식에는 도토리전, 도토리묵, 건조도토리잡채, 들깨수제비, 도토리묵밥 등 다채로운 도토리 요리가 포함되어 있어 가성비가 훌륭하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혼자 방문했기에 아쉽게도 정식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특선 숲속 도토리 정식’을 주문했다. 훈제오리와 왕갈비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는데, 왠지 도토리 요리에는 훈제오리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훈제오리를 선택했다.
주문을 마치자, 정갈한 밑반찬들이 하나둘씩 테이블 위를 채우기 시작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알타리무김치,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나물 무침, 간장 양념에 조려진 쫄깃한 버섯볶음 등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맛깔스러운 반찬들이었다. 특히 알타리무김치는 톡 쏘는 맛과 시원한 뒷맛이 일품이었다. 겉절이 김치에 깐깐한 입맛을 가진 나를 사로잡을 정도였으니, 김치 맛은 보장된 셈이다.

잠시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특선 숲속 도토리 정식’이 모습을 드러냈다. 훈제오리, 메밀전병, 메밀전, 묵무침, 들깨수제비, 묵밥으로 구성된 풍성한 한 상 차림이었다. 마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듯, 화려한 색감과 정갈한 플레이팅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장 먼저 훈제오리부터 맛보았다.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가지런히 놓인 훈제오리는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것이 시각적으로도 식욕을 자극했다. 훈제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입안 가득 풍미를 더했다. 훈제오리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담백한 맛은 신선한 채소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함께 곁들여 나온 양파의 달콤함과 톡 쏘는 겨자소스는 훈제오리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었다.

다음으로 맛본 것은 메밀전병이었다. 얇게 부쳐진 메밀전병 속에는 매콤한 양념으로 버무려진 채소가 가득 들어 있었다. 쫀득한 메밀피와 아삭아삭 씹히는 채소의 식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은은하게 퍼지는 매콤한 맛은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메밀전에도 손을 뻗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메밀전 위에는 쪽파와 깨가 듬뿍 뿌려져 있었다. 젓가락으로 찢어 입에 넣으니, 얇고 바삭한 식감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메밀 특유의 담백한 맛은 간장 양념과 어우러져 더욱 깊은 풍미를 자아냈다.

새콤달콤한 묵무침은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묵 특유의 부드러운 식감과 신선한 채소의 아삭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참기름의 고소한 향이 더해져 풍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묵을 그다지 즐겨 먹지 않는 나조차도 젓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들깨수제비는 고소한 향이 코를 자극하는 메뉴였다. 뽀얀 국물 안에는 쫄깃한 수제비와 부드러운 도토리묵이 듬뿍 들어 있었다. 국물을 한 입 맛보니, 깊고 진한 들깨 향이 입안 가득 퍼져 나갔다. 텁텁함 없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뒷맛 또한 인상적이었다. 수제비와 묵의 조화는 생각보다 훌륭했다. 쫄깃함과 부드러움이 번갈아 느껴지면서, 다채로운 식감을 선사했다.
마지막으로 맛본 것은 도토리묵밥이었다. 시원한 멸치 육수에 도토리묵과 밥을 말아 먹는 묵밥은 깔끔한 마무리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김가루와 잘게 썰은 김치가 더해져 감칠맛을 더했다. 묵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니, 속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숲속도토리마을’의 음식은 전체적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MSG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신선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덕분에 먹고 나서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편안했다. 마치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7살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손님도 아이가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모습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벽면에 KBS ‘동네 한 바퀴’에 소개되었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역시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식당을 나서는 길, 주인장의 따뜻한 미소와 배웅에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테이블 간 간격이 좁아 다소 소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기고 싶다면 방문을 재고해보는 것이 좋겠다. 또한, 일하는 분들이 다소 지쳐 보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친절함은 여전하다는 의견이 많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멜라민 그릇 대신 도자기 그릇을 사용했으면 더욱 고급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숲속도토리마을’ 바로 뒤편에는 신정산 테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식사 후 가볍게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굳이 등산화를 챙겨 신지 않아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라 부담이 없다. 숲 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은 ‘숲속도토리마을’ 방문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식당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총평하자면, ‘숲속도토리마을’은 건강하고 맛있는 도토리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자연 속에서 힐링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면, 주저 없이 이곳을 추천한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에도 좋고, 가족 외식 장소로도 손색없다. 다만, 저녁 장사는 하지 않고 점심시간에만 운영하니 방문 시 시간을 꼭 확인해야 한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꼭 다시 방문해야겠다. 그땐 꼭 ‘숲속도토리정식’을 2인분 이상 주문해서 푸짐하게 즐겨봐야지. 신정산의 맑은 정기를 받으며 맛있는 도토리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 ‘숲속도토리마을’. 양천구의 숨은 맛집으로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