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할머니 댁을 찾았다. 어린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구시포 해수욕장.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백사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곳이다. 이번에는 특별히, 할머니께서 손주들 몸보신 시켜주겠다며 구시포의 숨은 맛집으로 안내하셨다. 할머니는 이 동네 토박이시라, 끝자락에 숨어있는 진짜 맛집들을 꿰뚫고 계신다.
푸른 하늘 아래, 저 멀리 “구시포 하우스 풍천장어·쭈꾸미”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주차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고, 건물 앞쪽으로는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한 수족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왔었던 검정색 하우스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익숙함과 푸근함이 느껴졌다. 그때 그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고 깔끔한 홀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마다 놓인 환풍구와 숯불이 장어 맛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메뉴판을 보니 장어구이 외에도 쭈꾸미볶음, 백합칼국수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할머니와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장어 1kg과 쭈꾸미볶음, 그리고 백합칼국수 3인분을 주문했다. 어른 여섯 명에 초등학생 한 명이었으니, 이 정도는 거뜬하리라 생각했다.
잠시 후, 밑반찬들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화려하거나 가짓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정갈하고 맛깔스러워 보였다. 특히 장어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편마늘, 청양고추, 생강, 무쌈, 쌈장, 락교 등 6가지 곁들임이 인상적이었다. 깻잎 장아찌, 묵은지, 갓김치 등 전라도 특유의 손맛이 느껴지는 반찬들은 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밑반찬에 감탄하고 있을 때, 뜻밖의 서비스가 등장했다. 바로 따끈한 고구마튀김이었다. 갓 튀겨져 나온 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튀김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먹었던 바로 그 맛이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모두 고구마튀김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어가 숯불 위에 올려졌다.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장어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직원분께서 직접 장어를 구워주셨는데,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모습이 정말 예술이었다. 장어가 익어가는 동안,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잘 익은 장어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니,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했다. 숯불 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장어 특유의 고소함이 극대화되었다. 굳이 소스를 찍어 먹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었다. 쌈 채소에 장어와 곁들임 재료들을 함께 싸서 먹으니, 풍성한 식감이 입안을 즐겁게 했다. 특히, 깻잎 장아찌와 장어의 조합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장어를 순식간에 해치우고, 쭈꾸미볶음을 맛볼 차례가 왔다. 빨갛게 양념된 쭈꾸미볶음은 매콤한 향을 풍기며 식욕을 자극했다. 쭈꾸미는 질기지 않고 쫄깃쫄깃했으며, 양념은 과하게 맵지 않고 적당히 매콤달콤했다. 쭈꾸미볶음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밥 생각이 났다.

공깃밥을 추가하여 쭈꾸미볶음과 함께 비벼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김가루까지 뿌려 먹으니, 더욱 고소하고 맛있었다. 아이들도 맵다 맵다 하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쭈꾸미볶음 양념에 밥을 볶아 먹어도 정말 맛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백합칼국수가 나왔다. 커다란 냄비에 가득 담긴 칼국수는 푸짐한 양을 자랑했다. 뽀얀 국물 위로 큼지막한 백합이 듬뿍 올려져 있었다. 국물을 한 입 맛보니,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면발은 쫄깃쫄깃했고, 백합은 신선하고 쫄깃했다.

칼국수를 어느 정도 먹고 난 후, 남은 국물에 밥과 계란을 넣어 죽을 만들어 먹었다. 메뉴판에는 없었지만, 아는 사람들만 시켜 먹는다는 숨겨진 메뉴였다. 죽은 정말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칼국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배가 불렀지만, 숟가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 냄비들. 정말 배부르고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할머니는 역시 구시포 맛집은 이 집이라며 어깨를 으쓱하셨다. 나 역시 할머니의 맛집 선택에 감탄했다.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로 갔는데, 나이 지긋하신 남자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몇몇 후기에서는 불친절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내가 겪은 사장님은 푸근하고 정감 있는 분이셨다. 어쩌면 손님이 많아 바쁘실 때는 무뚝뚝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과 잔잔한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식당 바로 앞에 구시포 해수욕장이 있어, 식사 후 산책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해변을 거닐며,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했다.

고창 구시포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한 시간은 정말 소중했다. 다음에 또 구시포에 오게 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맛집을 다시 찾을 것이다. 그때는 다른 메뉴들도 맛봐야겠다. 특히, 봄에 쭈꾸미 먹으러 꼭 다시 와야지!



